면회심사

외통궤적 2019. 8. 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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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011028 면회심사
 발길에 다져져서 반들거리는 작은 흙 마당 한복판에 우리들이 사는 집(?) 모양의 야전용 천막 한 개가 달랑 세워졌다. 갓 펴서 친 진초록천막에선 싫지 않은 기름 냄새가 풍겨 나온다. 칠이 벗겨지지 않은 새까만 쇠고리가 천막의 처마 둘레에 나란히 박혀서 길들지 않은 연초록의 마사(麻絲)끈에 꿰여서 팽팽히 이끌리어 힘 있어 보인다. 그런가하면 천막둘레의 땅바닥에 박힌 작은 말뚝은 아직 빗물자국 하나 없이 깨끗해서 내 마음을 산뜻하게 한다.
얼마 전에 파서 고른 마당의 흙냄새가 이 새 천막의 기름내와 아우러져서 내 고향 바닷가의 해당화 향기에 얹혀나는 바다냄새 같아서, 잠시 제자리에서 하늘을 올려보고 구름을 찾아본다. 그러나 바다가 보이지 않는 이 골짜기에서, 닮은 고향 바다 구름을 나는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이제 바다와 어울린 뭉게구름을 볼 수 없이 고향을 잊고 언제까지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려한다. 공간적 존재를 제한 받는 억류당한 몸, 시간을 앞당겨서 먼 훗날을 피부에 접촉하려 안간힘을 쏟는다. 무지갯빛 꿈은 내 지친 영혼의 죽지에 매달려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내 앉을 자리를 찾아 희박한 공기를 서서히 젓는다.
어쩌면 내 앞날의 예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천추(千秋)의 한이 되는 갈림길이 될지도 모를 한 순간을 맞아 긴 숨을 몰아쉬는 나, 내 의지를 스스로 물어 다진다. 지금은 미결의 장, 그대로 시간이 정지됐으면 싶다. 그러나 결정된 의지의 순간선택을 요구할, 그 때는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천체의 무게를 혼자 진 듯 번민하면서도 작은 나를 돌아본다. 나를 지탱하는 지주(支柱)는 고작 입은 옷가지와 담요 한 장과 비옷 한 장하고 손잡이에 구멍 뚫린 프라이팬 밥그릇과 거기 꾀인 숟가락 한 개가 전부인 것을 자각할 때, 내 모습이 투영되는 내 눈동자가 뿌옇게 되어 앞을 가린다. 이 초라한 소품이 어찌 멀고먼 내 갈 길을 비단으로 깔아 줄 것이며 이 어찌 긴 여정에서 동반 행장(行裝)이 되어줄 것인가?
잠시 머뭇거린다. 어쩔 수 없이 밀려 다가가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다지고 또 다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난관을 뚫고 내가 지향하는 이 땅에 떨어져서, 내가 설 수 있는 땅을 밟고 서리라! 이런 일은 두 번 오지 않을, 내게 주어진 절효의 기회다! 어금니를 굳게 깨물고 들어섰다.
면회심사장은 싱겁게 초라하고 단조롭다. 하지만 이미 내린 엄격한 통제로 인한 당일의 함구령을 어기는 포로는 없다. 한 개의 책상 앞에 미군장교와 통역관 한 명이 고작이고 수용소 안에 깔린 비무장 미군들이 두 개의 인간 터널을 만들어서 이북으로 갈 사람과 이남에 남을 사람을 서로 다른 터널로 옹호하여 유도하는 것이다.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하게 처리하는 미군의 솜씨가 인상 깊다. 그들은 텐트 안의 한쪽에 북쪽다른 한쪽엔 남쪽의 팻말을 세우고 한사람씩 입실시켜서 자유의사로 두 팻말 중 한쪽으로 가 서도록 하는, 말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함으로서 포로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반영하도록 배려하였다. 가장 합리적 방법이다. 만약 구두로 심문한다면, 우선 말소리가 새어나가서 포로들에게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듣는 포로의 입장에서는 억류자로서의 입지에 압도 될 수도 있어서, 이후 분리 수용 하드래도 새로운 불씨가 될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까지가 함축되어 있는 듯해서 놀랍다.
나는 내 뜻대로 남기로 하는 끼리의 동질자의 모임, ‘우익오백 명 단위 수용소에 넘어 갔다.
하늘이 맑고 높아 보인다. 내가 갈 먼 길의 한발자국을 내디디고 서서히 움직여본다. 모든 것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철조망은 나를 구속하는 가둠 장치가 아니라 내 안전을 보장하는 울타리로 변하고 있다. 둘러선 미군은 이미 적이 아니라 우군의 위치의 내 보호자로 둔갑되어있다.
수용당국은 하나도 변하지 않건만 나는 이토록 자유로이 비상(飛翔)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고 세상의 어느 것도 내 정신적 영역을 침범하지는 못한다. /외통-

2655.011028 면회심사

  1951년 여름. 볕이 거제도의 중심부 남쪽 산골짜기를 뜨겁게 내리 쬐이고 있다. 거칠게 자리한 96수용소 철조망 사이에서 포로들의 숨결을 받아 여리게 자란 풀포기의 물기를 앗아서 축 늘어뜨린 어느 한 낮, 반짝이는 종이쪽지가 눈 내리듯 하얗게 하늘을 가려 내린다. 뿌리고 간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요란한 폭음소리만 귀청을 찌른다. 하얀 전단은 수용소의 육중(六重) 철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르게 살포된다.
어느 수용소가 온순하고 어느 수용소가 포악한지를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요사이, 우익을 자처하는 포로들은 휴전반대를 외치고 좌익을 내세우는 수용소에서는 미군철수를 외친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아우성이니 당국은 뒤섞인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터에, 소요(騷擾)는 휴전회담의 진척에 따라 날로 격해지고 있다. 뚫린 곳이라곤 하늘밖에 없으니 하늘길이 당국의 의사전달 수단의 제일 창구인 셈이다.
각자의 향배(向背)를 정하는 개별면회심사를 아무 날 아무 때부터 아무 때 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할 터인즉 곰곰이 생각하여 후회 없는 선택을 할 것이며 심사순간부터 별도로 분리수용 할 참이니 각자는 소지품 일체를 휴대하여야 한다.’는 요지의 명령이다.
사흘이나 있으니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지만 기로에 선 나의 고뇌는 폭발지경으로까지 팽배(彭排)해 있다.
하루밤낮을 생각했다. 그리고 홀로 굳은 결심을 하며 합당한 이유를 착착 마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가문의 종손으로써, 독신 아버지가 일찍이 홀로 되신 할머니를 모시고 고생하시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나 또한 맏이로서 가문의 기둥노릇을 마땅히 해야 하는 업을 타고났으니 응당 이북으로 가야하련만, 반드시 이런 가업을 이을 환경 보장이 없다. 또다시 전선에 투입되거나 포로의 불명에를 만회한다며 탄광의 강제노동에 끌려가야 할, 자명한 이치에 맞닿아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때가 되어서 진정 부모를 모시게 될 날까지는 내가 클 수 있는 넓은 천지를 택하자! 많은 선각자(?)가 이미 남쪽에 내려와 있지 않는가? 그들은 기회의 땅으로 남쪽을 선택했지 않는가? 그들은 또 모든 것을 버리고 적수공권으로 이 땅을 밟지 않았는가? 그들은 잡히면 죽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선의 삼팔선의 넘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는 지금 이곳에 주저앉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휴전 후 중립국 감시 하에 자유선택의 기회를 얻어 되돌아 올 수 있을 때까지 몸을 보존하려면 여기 남고자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안전을 도모해야하지 않겠는가? 이것만으로도 남을 이유는 충분하다. 또 내가 자라서 노닐 물이 더 깊고 넓고 맑지 않은가? 해서 내 꿈을 이룬 다음, 그때에 가서는 이북에도 갈 수 있는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이것뿐이 아니다. 소위 유물사관에 바탕을 둔 체제의 경직, 개인의 역량을 제한하는 풀로레타리아 독재가 마치 민주주의인양 억지 대는 그 논리의 허구, 물질만으로 구성된 사람이라고 정신세계를 도외시하는, 종교적 탐구의 제한된 환경, 설상가상으로 전쟁책임의 전가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하는 움직일 수 없는 대목이다. 형이상학이 어떤지 냄새 맡게 하는 자유, 이런 것들은 배우지 못한 나로 하여금 이 땅이 자석처럼 당기는 또 다른 힘이 된다.
나는 여기 남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치미 떼고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정 아무개를 찾아서 그의 천막에 갔다. 아무도 모르게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내가 먼저 물었다. ‘니 남을래?’ 외마디 물음에 그는 난 남는다!’ 그 또한 외마디 대답이고 이어서 나 또한 나도 남는다!’ 는 외마디말로 끊고 굳은 악수로 이제까지의 우정을 재학인 했다.
천하를 얻은 것 같이 가슴이 꽉 차 올랐다.
이윽고 고향일가의 아저씨에게 가서 조용히 불러 외진 곳에 가서 물었다. ‘전 남을 텐데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거요?’하는 내 물음에 아저씨는 나도 남는다!’로 응답하였다. 우리는 남다른 교감을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나는 이 땅에 적어도 진실한 두 사람의 의지(依支)처를 두었으니 장차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틀 남은 면회심사 때까지 나는 번갈아 가며 이들의 의사를 확인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를 에울 수 있는 동질의 인자를 만나서 당당히 뛰놀 수 있겠기 때문이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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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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