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엉뚱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하면서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내가 제일 마지막 날에 태어났더라면 앞서간 사람들의 행적을 어지간히 짐작이라도 할 테지만 어중간히 지금에 태어났으니 나 죽은 후에 언제까지나 펼쳐질 온갖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사라지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입가가 움직인다.
마치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그 한 토막을 잇는 선수가 이미 달린 선수들이 어디론지 사라졌지만, 그들의 실력은 이미 드러나서 알고, 또 그가 달릴 때는 비록 자신은 알 수 없고 스스로 뛰니 그만이지만 그의 뒤를 이어 뛸 선수들은 아직 달리지 않고, 그가 달린 후에 바통을 넘겨주고 사라질 터이니 그들의 뛰는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거와 진배없다. 그러니 그 양상이 얼마나 우스운가?
이렇듯 나도 미래의 일들이 여러 갈래로 상상될 따름이지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뾰족한 방도가 없다. 내가 그 역할을 얼마나 충실했는지 알 수 있고 또 나와 함께 달린 사람들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지만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인류의 이어달리기가 어느 시점에 가서 쓰러져 종말을 맞을지, 아니면 어느 우주공간에 다다라서 지치고 비틀거릴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달리 생각해서, 사람이 한 발로 더 멀리 더 빠른 보폭으로 빨리 달릴 것인지 아니면 타조처럼 날개를 달고 멀리 뛸지는 알 길이 없는, 우리 인류의 미래가 궁금하다. 공상 과학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우리의 미래상이 아주 흥미롭지만, 정확히 아무도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상이다.
이렇듯 어렵기 그지없는 생각을 끄집어내서 생각해 보는 그 발상이 엉뚱하지만, 그래도 잠깐 스치는 생각을 잡아매어 음미해 보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다.
알기에,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과학자들은 진화한다고 할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이 다듬어진다고 할 것인데 어떻게 보던, 사람은 부단히 변한다는 예측에는 다를 바가 없으니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 결과인 인간 형상은 어떠한지 자못 흥미롭다.
아직 우리는 발바닥으로 땅을 딛고 손으로 사물을 잡고 일하며 살아간다. 이런 신체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문명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신체 구조에 걸맞은 생활에서 벗어나서 살아간다. 발이나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
특별히 그들 하나하나에 진화, 신의 배려가 없는 것은 아직 그런 행위를 용납(적응, 창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대로 진행되어 언젠가는 손과 발은 퇴화의 길로 접어들고, 인류의 미래를 설계 창안하는 데 필요한 머리와 이를 실행할 기계에 명령할 수 있는 입만 크게 진화, 창조될 것이라는 유추가 또한 가능하다.
모두를 로봇이 하고 사람은 유리 상자 안에서 커다란 달걀처럼 뒹굴면서 살지도 모른다.
햇빛을 머리에 쐬지 않으니, 머리카락도 퇴화할 것이고 모든 모공(毛孔)은 각질(角質)화되고 인체의 어느 구석을 보아도 터럭은 볼 수 없을뿐더러, 가장 신성하고 내밀한 곳의 보호 수단인 거웃, 체모도 깡그리 사라지고 생식기관도 퇴화하고 말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것은 복제인간의 시도로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조짐이 일각에서 인다고 해서 그쪽으로 기울어 변화되리란 예측은 훗날에야 그 여부가 실증될 것이기에, 지금은 속단에 불과하다. 다행한 것은 아직 우리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체모와 그 기능, 머리카락들을 볼 때 신은 우리 인간의 욕심을 용납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어서 위안이 된다.
제한받지 않는 고차원적 사색(思索)의 문턱을 드나들 수 있게 된 내가 달갑고 고맙다. 나를 있게 한 분께 찬미와 감사할 뿐이다.
달걀 같은 내가 아니니 더욱 감사하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