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9.040801 기록
내 뿌리를 찾아 더듬다 보니 곁뿌리에도 눈길이 끌리게 되여 우리네의 성에도 명암이 있는 것 같아서 상념에 끌려가곤 한다.
아주 귀한 성이 눈에 들어 올 때면 그 성씨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진다. 그 성은 시조로부터 지금 살고 있는 세대까지 몇 대나 될까? 어떤 연유로 그 성씨를 갖게 되었을까? 남의 일이라서, 전문가가 아니라서,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조심스레 내 생각을 담는다 해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이 성이 삶의 전부로써 우리전통사회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서다.
기록으로만 살필 수 있는 것과 사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 중에 어느 하나만 완벽하다면 나머지는 추론으로 다듬어지기가 일수인데 반해서 온전히 기록만으로 남아 있다면, 더군다나 그 기록이 당대의 시대상황에 긍정적인 교훈으로 살아있지 않다면 어느 후손이든지 그 기록을 없애거나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거기에 권력이 개입됨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의 힘으로 정당화하고 평가의 기준도 다르게 될 개연성이 크다.
우리네 성씨들이 하나같이 역사의 주도적 역할만 했지 악역이나 역적의 위상을 정당화한 채 후손에게 넘겨주는 문중은 보지를 못했다. 다시 말해서 문중은 오로지 모든 시대에서 모든 부문에서 주도적이고 긍정적이고 빛나는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임꺽정의 후예를 찾을 수 없고 이괄(李适)의 자손임을 떳떳이 나서서 밝히지 않는 것이 우리네의 유교적 전통이다. 그래서 지울 수 없는 선조를 버리고 다른 파의 후손으로 둔갑하거나 창 씨를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명예나 불명예가 당사자에게 한정하는 사회라면 또 어떻게 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 때는 그렇게 됐을성싶다.
내 무식의 소치로 매도되길 두렵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당돌한 생각에 지배되는 것은 내 조상에 대한 일관된 화려한 기록에서, 보잘것없는 그 후손인 우리에서, 볼 수가 있어서다.
모든 성씨의 족보를 다 꺼내서 늘어놓고 한 시대에서 서민으로 있었을 사람의 이름을 모아 들여서 위계의 순으로 그림을 그려 본다면 그 모양이 피라미드의 형태를 나타낼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기록만을 가지고 맞니 틀리니 하며 '부관참시'의 형국을 빗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은폐와 가장(假裝)의 기록으로라도 맥을 이으려는 많은 민중들의 삶의 형태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하얗게 표백 된 역사적 실체들이 얼마나 많을지! 굳이 실록의 진실을 믿는다 해도 그 뒤 안에 틀어 앉은 부조리의 실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라면, 왕의 기록과 병행으로 한 노비의 필생의 삶, 또는 필부의 일생을 병기해서 사서(史書)에 남긴다면 그야말로 사실(事實)적 사서(史書)가 되지 않았겠는가! 싶어서 아쉽다.
역시 지배층의 일방적 놀음이다. 권력자의 많은 행적과 실적들이 그 지배층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그들만의 놀음으로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없었음을 미루어 볼 때, 그 조형물을 이룬 하나하나의 소재의 형체에 묻어있는 피땀과 그 속에 스민 얼을 만나 볼 수 있음은 차라리 역설적이다.
쓰지 않고 나타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이 오묘한 이치를 모르다니! 없어졌어야 할 것들이 더 넓게 더 크게 보이니 말이다. 결국 지배와 피지배는 한 뭉치이고 지배자의 자의로 지우려하는 피지배자의 흔적은 역기능으로 작용해서 오히려 더 키워지는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뿌리만은 옳게 찾아 이으려고 백방으로 나부대는 나 또한 이율배반이다.
이토록 우리네 삶은 해학적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