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뿌리를 찾아 더듬다 보니 곁뿌리에도 눈길이 끌리게 되어 우리네의 성에도 명암이 있는 것 같아서 상념에 끌리곤 한다.
아주 귀한 성이 눈에 들어올 때면 그 성씨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진다. 그 성은 시조로부터 지금 사는 세대까지 몇 대나 될까? 어떤 연유로 그 성씨를 갖게 되었을까? 남의 일이라서, 내가 전문인이 아니라서,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조심스레 내 생각을 담는다고 해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이 성이 삶의 전부로써 우리 전통 사회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서다.
기록으로만 살필 수 있는 것과 사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 중에 어느 하나만 완벽하다면 나머지는 추론으로 다듬어지기가 일쑤인 데 반해서 온전히 기록만으로 남아 있다면, 더군다나 그 기록이 당대의 시대 상황에 긍정적인 교훈으로 살아있지 않다면 어느 후손이든지 그 기록을 없애거나 지우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거기에 권력이 개입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의 힘으로 정당화하고 평가의 기준도 다르게 될 개연성이 크다.
우리네 성씨들이 하나같이 역사의 주도적 역할만 했지, 악역이나 역적의 위상을 정당화한 채 후손에게 넘겨주는 문중은 보지를 못했다. 다시 말해서 문중은 오로지 모든 시대에서, 모든 부문에서 주도적이고 긍정적이고 빛나는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 임꺽정의 후예를 찾을 수 없고 이괄(李适)의 자손임을 떳떳이 나서서 밝히지 않는 것이 우리네의 유교적 전통이다. 그래서 지울 수 없는 선조를 버리고 다른 파의 후손으로 둔갑하거나 창 씨를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명예나 불명예는 당사자에게 한정하는 사회라면 또 어떻게 됐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렇게 됐을 성싶다.
내 무식한 까닭으로 매도되길 두렵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당돌한 생각에 지배되는 것은 내 조상에 대한 일관된 화려한 기록에서, 보잘것없는 그 후손이 우리(나)에서, 볼 수가 있어서다.
모든 성씨의 족보를 다 꺼내서 늘어놓고 한 시대에서 서민으로 있었을 사람의 이름을 모아서 그림으로 그려 그 모양이 피라미드의 형태를 나타낼 것임이 틀림없다면 이런 생각은 진실에 가깝다. 미루어, 다만 기록만을 가지고 맞니? 틀리니 하며 '부관참시'의 형국이 될 것 같아서 두려울 뿐이고, 아울러 이 얼마나 우리 인간들의 기록이 허구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은폐와 가장(假裝)의 기록으로라도 맥을 이으려는 많은 민중 삶의 형태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하얗게 표백된 역사적 실체들이 얼마나 많을지! 굳이 실록의 진실을 믿는다고 해도 그 뒤 안에 틀어 앉은 부조리의 실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라면, 왕의 기록과 병행으로 한 노비의 필생의 삶, 또는 필부의 일생을 함께 적어서 사서(史書)에 남긴다면 그야말로 사실(事實)적 사서(史書)가 되지 않았겠는가! 싶어서 아쉽다. 역시 지배층의 일방적 놀음이다. 권력자의 많은 행적과 실적들이 그 지배층 자기 손에 의해서 그들만의 놀음으로 온전히 이루어질 수도 없었음을 미루어 볼 때, 그 조형물을 이룬 하나하나의 소재의 형체에 묻어있는 피땀과 손때와 그 속에 스며있는 얼을 만나 볼 수 있음은 차라리 역설적이다.
쓰지 않고 나타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이 오묘한 이치를 모르다니! 없어졌어야 할 것들이 더 넓게 더 크게 보이니 말이다. 결국 지배와 피지배는 한 뭉치이고 지배자의 마음대로 지우려는 피지배자의 흔적은 역기능으로 작용해서 오히려 더 키워지는 것이 흥미롭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뿌리만은 옳게 찾아 이으려고 백방으로 나부대는 나 또한 이율배반이다.
이토록 우리네 삶은 해학적이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