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89.040930 최후
나는 이따금 엉뚱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하면서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내가 제일 마지막 날에 태어났더라면 앞서 간 사람들의 행적을 어지간히 짐작이라도 할 테지만 어중간히 지금에 태어났으니 나 죽은 후에 언제까지나 펼쳐질 온갖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사라지게 하는, 내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입가가 움직인다.
마치 이어달리기 경주에서 그 한 토막을 잇는 선수가 이미 달린 선수들이 어디론지 사라졌지만 그들의 실력은 이미 드러나서 알고, 또 그가 달릴 때는 비록 자신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뛰니 그만이지만 그의 뒤를 이어 뛸 선수들은 아직 달리지 않고, 그가 달린 후에 버튼을 넘겨주고 사라질 터이니 그들이 뛰는 모습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거와 진배 없다. 그러니 그 양상이 얼마나 우스운가?
이렇듯 나도 미래의 일들이 여러 갈래로 상상될 따름이지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뾰족한 방도가 없다. 내가 그 역할을 얼마나 충실했는지 알 수 있고 또 나와 함께 달린 사람들의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지만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인류의 이어 달리기가 어느 시점에 가서 쓰러져 종말을 맞을지, 아니면 어느 우주 공간에 다다라서 지치고 비틀거릴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달리 생각해서, 사람이 한 발로 더 멀리 더 빠른 보폭으로 빨리 달릴 것인지 아니면 타조처럼 날개를 달고 멀리 뛸지는 알 길이 없는, 우리 인류의 미래가 궁금하다.
공상 과학 소설 속에서나 등장 할법한 우리의 미래상이 아주 흥미롭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겠다. 이렇듯 어렵기 그지없는 생각을 끄집어내서 생각해 보는 그 발상이 엉뚱하지만 그래도 잠깐 스치는 생각을 잡아 매어 음미해 보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다.
알기에,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창조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과학자들은 진화 한다고 할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신의 영역에서 인간이 다듬어진다고 할 것인데, 어떻게 보든지 사람은 부단히 변한다는 예측을 함에는 다를 바가 없으니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 결과인 인간 형상은 어떠한지 자못 흥미롭다.
아직 우리는 발바닥으로 땅을 딛고 손으로 사물을 잡고 일하며 살아간다. 이런 신체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문명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신체구조에 걸 맞는 생활에서 적지 않게 벗어나서 살아간다.
발이나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 특별히 그들 하나 하나에 진화, 신의 배려가 없는 것은 아직 그런 행위를 용납(적응, 창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대로 진행되어 언젠가는 손과 발은 퇴화의 길로 접어들고, 인류의 미래를 설계 창안하는데 필요한 머리와 이를 실행 할 기계에 명령할 수 있는 입만 크게 진화, 창조될 것이라는 유추가 또한 가능하다.
모든 것은 로봇이 하고 사람은 유리 상자 안에서 커다란 달걀처럼 뒹굴면서 살지도 모른다. 햇빛을 머리에 쐬지 않으니 머리카락도 퇴화 할 것이고 모든 모공(毛孔)은 닫혀서 각질(角質)화 되고 인체의 어느 구석을 보아도 터럭은 볼 수 없을뿐더러, 가장 신성한 내밀한 곳의 보호수단인 거웃, 체모도 깡그리 사라지고 생식기관도 퇴화되고 말 것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것은 복제 인간의 시도로 짐작이 가능하다.
한편, 이러한 조짐이 일각에서 인다고 해서 그쪽으로 기울어 변화되리란 예측은 훗날에야 그 여부가 실증될 것이기에, 지금은 속단에 불과하다. 다행한 것은 아직 우리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는 체모와 그 기능, 머리카락들을 볼 때 신은 우리 인간의 욕심을 용납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
제한 받지 않는 고차원적 사색(思索)의 문턱을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진 내가 달갑고 고맙다. 나를 있게 한 분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뿐이다.
계란 같은 내가 아니니 더욱 감사하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