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해방)

사적跡蹟迹 2013. 8. 1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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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해방)

 

 위 사진은 59년전 8월 15일 조국이 일제로 부터 해방돼 서울 시민들이 남산 국기게양대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장면.

 

일왕(日王) 히로히토가 45년 8월15일 정오.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미영중소 연합군에게 항복을 발표하자 서울 광화문 네거리으로 나와 환호하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

 

世界 2次大戰 日本 裕仁 降服文  (1945年 8月15日12時)

 

深ク世界ノ大勢ト帝國ノ現?トニ鑑ミ 非常ノ措置ヲ以テ時局ヲ?拾セムト欲シ ?ニ忠良ナル爾臣民ニ告ク 朕ハ帝國政府ヲシテ米英支蘇四國ニ對シ 其ノ共同宣言ヲ受諾スル旨通告セシメタリ 抑?帝國臣民ノ康寧ヲ圖リ萬邦共榮ノ樂ヲ偕ニスルハ 皇祖皇宗ノ遺範ニシテ朕ノ拳?措カサル所?ニ米英二國ニ宣戰セル所以モ 亦實ニ帝國ノ自存ト東亞ノ安定トヲ庶幾スルニ出テ他國ノ主?ヲ排シ 領土ヲ侵スカ如キハ固ヨリ朕カ志ニアラス 然ルニ交戰已ニ四?ヲ?シ 朕カ陸海將兵ノ勇戰 朕カ百僚有司ノ勵精 朕カ一億衆庶ノ奉公 各?最善ヲ盡セルニ拘ラス戰局必スシモ好轉セス 世界ノ大勢亦我ニ利アラス 加之敵ハ新ニ殘虐ナル爆彈ヲ使用シテ 頻ニ無幸ヲ殺傷シ慘害ノ及フ所眞ニ測ルヘカラサルニ至ル 而モ?交戰ヲ繼續セムカ終ニ我カ民族ノ滅亡ヲ招來スルノミナラス 延テ人類ノ文明ヲモ破却スヘシ 斯ノ如クムハ朕何ヲ以テカ億兆ノ赤子ヲ保シ皇祖皇宗ノ神靈ニ謝セムヤ 是レ朕カ帝國政府ヲシテ共同宣言ニ應セシムルニ至レル所以ナリ 朕ハ帝國ト共ニ終始東亞ノ解放ニ協力セル諸盟邦ニ對シ 遺憾ノ意ヲ表セサルヲ得ス 帝國臣民ニシテ戰陣ニ死シ職域ニ殉シ非命ニ斃レタル者及 其ノ遺族ニ想ヲ致セハ五?爲ニ裂ク 且戰傷ヲ負ヒ災禍ヲ蒙リ家業ヲ失ヒタル者ノ厚生ニ至リテハ 朕ノ深ク軫念スル所ナリ 惟フニ今後帝國ノ受クヘキ苦難ハ固ヨリ尋常ニアラス 爾臣民ノ衷情モ朕善ク之ヲ知ル 然レトモ朕ハ時運ノ趨ク所 堪ヘ難キヲ堪ヘ 忍ヒ難キヲ忍ヒ 以テ萬世ノ爲ニ太平ヲ開カムト欲ス 朕ハ?ニ國體ヲ護持シ得テ忠良ナル爾臣民 赤誠ニ信倚シ常ニ爾臣民ト共ニ在リ 若シ夫レ情ノ激スル所濫ニ事端ヲ滋クシ或ハ同胞排?互ニ時局ヲ亂リ 爲ニ大道ヲ誤リ信義ヲ世界ニ失フカ如キハ朕最モ之ヲ戒ム 宜シク擧國一家子孫相傳ヘ確ク神州ノ不滅ヲ信シ 任重クシテ道遠キヲ念ヒ總力ヲ將來ノ建設ニ傾ケ 道義ヲ篤クシ志操ヲ鞏クシ誓テ國體ノ精華ヲ發揚シ 世界ノ進運ニ後レサラムコトヲ期スヘシ 爾臣民其レ克ク朕カ意ヲ體セヨ  / 裕仁

 

 

  무조건 항복한다는 일왕의 육성방송을 듣고 있는 서울의 일본인들.(1945년 8월15일)

 

 

  8.15 조국 해방은 옥중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해방 만세를 외치는 출옥 애국인사들과 이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1945년 8월15일)

 

 

 

 

 

 조국의 해방을 환호하는 서울역 광장과 남대문로 일대의 인파.만나는 이마다 서로 부둥켜 안고 목이 터져라 해방 만세를 외치면서 밤이 되어도 흩어질 줄을 몰랐다.1945년 광복/ 그당시는 解放이라고 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기 위해 전남 광양 서국민학교 교정에 모인 군민들.(1945년 8월15일)

 

 

 

 

 

  전남 광주에서의 8.15해방 경축 퍼레이드

 

 

 1945년 8월15일 美, 英, 佛, 蘇 등 전승국 언론들과 미국에서 발간되던 독립신문은 日帝로부터의 한국 해방을`테러와 억압에 대한 승리`로 보도하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분석기사까지 곁들였다.

   

 

 전국에 메아리진 해방의 기쁨. 조국해방은 방방곡곡 어디라 할 것 없이 기쁨과 감격의 물결을 이루게 했다. 사진은 1945년 8월16일 전남 광양읍 목성리에서 주민들이 해방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李坰謨씨 제공)

 

 

  시민환영 받는 몽양 여운형 선생. 45년8월16일 휘문고 교정에서 연설하기에 앞서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는 몽양(앞쪽 가운데). 

 

 

몽양 여운형(呂運亨). 1945년8월16일 해방직후, 휘문학교에서 해방의 기쁨을 전하는 여운형.

   

 

몽양 여운형(呂運亨). 1945년8월16일 해방직후 휘문고보 교정에서 연설하는 몽양.

 

 

 

백범 김구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경을 떠나는 김구일행. 왼쪽으로부터 이청천장군,안미생(김구선생의 자부) 김구, 그리고 그뒤에 윤경빈

 

 

임시 정부 귀국 환영 꽃전차

 

 

 

36년간의 광복을 맞은 임시정부의 김구주석이 감격어린 표정으로 귀국, 동포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다.

 

 임정귀국 축하행진. 임시정부의 귀국을 맞아 서울시내 곳곳엔 환영아치가 세워졌고 학생들의 축하 시가행진도 잇달으면서임정에 대한 국민적 여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갔다.

 

 

 조국으로 돌아온 임정요인들.왼쪽 세번째가 법무위원이었던 이시영다음이 주석 김구,부주석 김규식, 외무부장 조소앙, 내무부장 신익희 순이다.

 

 

총독부 광장의 게양대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있다.(1945년 9월9일)

 

 

조선총독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항복한 직후인 1945년 9월9일 오후 철수하고 있는 일본군

 

 

 

해방후 국민학교 첫개교.해방 약 한달 뒤인 1945년 9월24일 전국에서 국민학교 교육이 일제히 시작되어 빼앗겼던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는 감격을 맛보았다. 사진은 첫 수업

 

 해방 직후의 시골 국민학교 교실.진흙 화로 둘레에 배치한 간이 책상에 옹기종이 모여앉아

진지한 얼굴로 되찾은 우리 글을 익히고 있다.사진은 강원도의 한 산골.

   

 

해방경축 종합경기대회. 1945년 10월27일에 열린 이 대회는 해방후의 첫 전국체전으로

태극기를 든 손기정씨가 감격에 벅차 눈물을 닦고 있다.

 

 

해안경비대의 해방경축행진. 창설 당시 3백명에 불과했던 경비대가 대원 1000여명의 해안경비대로 발전. 해방1주년 경축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1946년 8월15일)

 

  윤봉길의사 마지막 모습

 

서울의 시민(1945-1949)

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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