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期
장판방엔 곰팡이가
목화송이 피듯 피어났고
이 방 주인은 막벌이꾼.
지게목바리도 훈김이 서리어올랐다.
방바닥도 눅진눅진하고
배창자도 눅진눅진하여
공복은 헌겁오래기처럼 뀌어져 나오고
와그르르 와그르르 숭얼거리어
뒷간 문턱을 드나들다 고이를 적셨다.
/오장환(1918~1951)
올해 장마는 길었다. 꼼짝없이 처마 아래에서 장쾌하게 쏟아지는 비를 구경하는 일은 나쁘지 않지만 방구석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하면 어찌할 바 모르게 힘겹다. 지게를 지고 막벌이를 해서 먹고사는 이의 장마철 하루다. 아마도 먹고살 것을 찾아 홀로 상경한 가장일 것이다. '지게목바리에 훈김이 서리어올랐다'고 한 걸 보면 일을 못한 지가 꽤 되었다. 그해도 장마가 여간 긴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정이니 제대로 먹을 것 못 먹고 물로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배 속도 장마가 졌다. 결국 민망한 사태를 만나고 말았다.
1937년 간행된 시집에 실린 시인이 당대 현실 사정을 우기(雨期)로 치환해 읽어 보면 처절한 절망이 느껴진다. 지금 우리네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