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벌등안(捨筏登岸)
시골 아전의 자식이었던 다산의 제자 황상은 만년에 서울로 올라와 시로 추사 형제와 권돈인, 정학연 형제 등 당대 쟁쟁한 문사들의 높은 인정을 받았다. 그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그는 막막해진 심경을 벗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종유했던 여러 분이 차례로 세상을 뜨매, 비유컨대 다락에 올라갔는데 사다리가 치워지고(登樓而梯去), 산에 들어가자 다리가 끊어진 격(入山而橋斷)이라 하겠습니다. 저 많은 물과 산에 지팡이와 신발을 어디로 향해야 하리까."
다락에 올라간 사람은 그 사다리로 다시 내려와야 하고, 산에 든 사람은 다리를 되건너야 속세로 돌아올 수가 있다. 하지만 진리를 향한 걸음에는 다시 내려오는 길이 없다. "지붕에 올라간 다음에는 누가 쫓아오지 못하게 사다리를 치워야 한다.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다." 이것은 움베르토 에코가 한 말이다.
불가에서는 '사벌등안(捨筏登岸)'을 말한다.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장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이라고 썼다. 고기를 얻었거든 통발은 잊어라. 사다리가 없이는 언덕에 못 오르고, 통발을 써야만 고기를 잡는다. 언덕에 오른 뒤에 사다리를 끌고 다닐 수는 없다. 통발은 고기를 잡을 때나 필요하지 먹을 때는 쓸모가 없다. 뜻을 얻었거든 말을 잊어라(得意忘言).
"골리앗을 때려 넘겼기로서 조약돌을 비단에 싸서 제단에 둘 거야 없지 않은가? 위대한 것은 다윗이지 돌이 아니다. 그것쯤은 다 알면서 또 다윗은 하느님의 손이 역사의 냇가에서 되는 대로 주워든 한 개 조약돌임을 왜 모르나. 세상에 조약돌 섬기는 자 어찌 그리 많은고! 골리앗 죽었거든 돌을 집어 내던져라! 다음 싸움은 그것으론 못한다." 함석헌 선생이 '열두 바구니'란 글에서 한 말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산꼭대기까지 사다리 들고 가겠다는 사람이 많다. 도구일 뿐인 언어에 집착해 본질을 자꾸 망각한다. 아파 우는 자식을 마귀 들렸다고 매질해서 셋씩이나 굶겨 죽인 사이비 광신도 부부의 사건에서 한 극단을 본다. 제 눈에 들린 마귀가 헛마귀를 지어낸 참극이다.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 끝만 바라보는 광신의 광기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된다. 사다리는 치워졌다. 통발을 던져라. 다윗의 조약돌은 잊어라. 손가락에서 눈을 거두고 저 환한 달빛을 보라.
/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