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句示內 (절구시내) 아내에게 보여주다
隔水靑犬吠 (격수청견폐) 개울 건너 청삽사리 컹컹 짖어서
山家免寂寥 (산가면적요) 산골 집은 적막함이 겨우 깨졌네.
夜來風雨響 (야래풍우향) 밤 들어 비바람 치는 소리에
妻子話蕭蕭 (처자화소소) 처자식은 도란도란 얘기 나누네.
/이복현(李復鉉·1767~1853)
정조와 순조 연간의 저명한 시인 석견루(石見樓) 이복현이 썼다. 시 읊기를 즐겨 시를 읊는 곳이라는 뜻의 음시처(吟詩處)에 살면서 음시처상량문(吟詩處上梁文)을 지은 시인이다. 그가 서울 생활을 접고 과천 관악산 동쪽 만안교 앞쪽 산 아래로 집을 옮겼다. 산 아래 집의 풍경을 읊어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낮이면 집 앞에 있는 개울 건너편에서 청삽사리가 짖어 오랜 적막을 깨트리고, 비바람 칠 때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간다. 인구가 적었던 시절, 깊은 산중 외딴 집에서는 긴 적막을 깨트린 청삽사리의 짖는 소리가 반갑고, 비바람 속 도란거리는 가족들의 대화가 정겹다. 산골 풍경은 소리로 그릴 수 있다. 소음의 홍수 속에 사는 이들은 그 적막함의 맛을 모른다.
/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