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순이나 옥이 같은 이름으로 너는 온다
그 흔한 레이스나 귀걸이 하나 없이
겨우내 빈 그 자리를
눈시울만 붉어 있다.
어린 날 아지랑이 아른아른 돌아오면
사립문 열고 드는 흰옷 입은 이웃들이
이 봄사 편지를 들고
울 너머로 웃는다 /전연희
진달래가 만산 가득 피었다. 먹는 꽃, 참꽃이라고 반기던 진달래는 그런 연유만으로도 우리 민족과 슬픔을 아는 꽃이었다. 물론 진달래 화전(花煎)으로 봄날의 꽃놀이를 채근할 만큼 풍류도 은근히 풍기는 꽃이다. 간혹은 술도 담그는 진한 꽃이다. 그런데도 진달래 꽃빛에서는 역사의 핏물 같은 것, 배고프던 시절의 눈물 같은 것이 먼저 배어 나온다.
그래서인지 '순이나 옥이 같은 이름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는 꽃이 진달래다. '그 흔한 레이스' 하나 없는 소박한 모습이지만, 진달래꽃은 늘 얼얼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게 다 '사립문 열고 드는 흰옷 입은 이웃들이' 어른거리던 봄날의 기억 때문인가. '이 봄사 편지를 들고 울 너머로 웃는' 이웃과 꽃놀이패라도 꾸려볼까. 힘들수록 쉬어가랬다고, 진달래에 잠시 취해 시름을 나누는 것도 좋으리. 그렇게 옛 동무들을 부르면 짧은 봄날도 조금은 더 쉬어가리./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