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남아 임제(林悌, 1549~1587)가 술에 담뿍 취했다. 가죽신과 나막신을 짝짝이로 신고 술집 문을 나선다. 하인이 말한다. "나으리! 취하셨습니다요. 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어요." 임제가 대답한다. "이눔아! 내가 말을 타고 가면 길 왼편에서 본 자는 ‘가죽신을 신었군.’ 할 테고, 오른편에서 본 자는 ‘나막신을 신었구먼.’ 할 테니 뭐가 문제냐? 어서 가자."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나오는 얘기다.
" "짝짝이 신발은 누구든 한눈에 알아본다. 그런데 말 위에 올라타면 한순간에 모호해진다. 사람들은 제가 본 한쪽만으로 반대편도 그러려니 한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결국 진실 게임으로 번진다. 우기다가 사생결단의 싸움이 된다. 막상 당사자가 말에서 턱 내리면 둘 다 머쓱하다.
"(中略)"
" "내가 본 것은 분명히 나막신인데 반대쪽에 가죽신을 신었을 줄 어찌 짐작했겠는가? 한쪽에 가죽신을 신고 반대쪽에 나막신을 신는 미친 놈도 있는가? 제 판단만으로 결론지어 단죄하고 죽이자고 달려든다. 그러나 그런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 묘한 상황이 참 많다. 시비의 판단이 쉽지가 않다. 왼쪽 오른쪽만 있지 중간이 없다. 명심하라. 시비의 가늠은 중간에 있다(是非在中). 짝짝이 신발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중간은 어디인가?//정민 :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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