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다
뚝! 하고 부러지는 것 어찌 너 하나뿐이리
살다 보면 부러질 일 한두 번 아닌 것을
그 뭣도 힘으로 맞서면
부러져 무릎 꿇는다
누군가는 무딘 맘 잘 벼려 결대로 깎아
모두에게 희망 주는 불멸의 시를 쓰고
누구는 칼에 베인 채
큰 적의를 품는다
연필심이 다 닳도록 길 위에 쓴 낱말들
자간에 삶의 쉼표 문장부호 찍어놓고
장자의 내편을 읽는다
내 안을 살피라는 /오종문
겨울과 봄이 바뀌는 요즘, 연필을 깎아야 할 것 같은 때다. 숙제도 없이 좋아라고 놀던 봄방학이 끝나가면서 슬슬 긴장감이 몰려온다. 코앞에 닥친 새 학년, 새 학교, 새로운 시작들 때문이다. 그럴 때면 연필을 꺼내 가지런히 깎고는 했다. 칼로 연필을 깎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참 좋았다. 그렇게 연필을 깎는 일로 자신을 가다듬던 소중한 기억들이다.
'살다 보면 부러질' 일도, '무릎 꿇는' 일도 많다. 연필 부러지는 것쯤은 다시 깎으면 되지만, '불멸의 시를 쓰고' 싶은 마음에 힘이 너무 들어가 더러는 마음까지 뚝! 부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결대로 깎'고 다듬는 게 중요하다. '삶의 쉼표' 찍어놓고 '내 안을 살피'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무렵은 특히 그런 것 같다./정수자·시조시인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