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산골에 달랑 집 한 채가 보인다. 등장인물은 단둘이고, 그들은 부부다. 남편은 방 안에 편히 앉았고 아내는 두 손으로 뭔가를 떠받친다. 잘 보니, 밥그릇과 반찬 그릇이 놓인 소박한 밥상이다. 얼굴 위로 치켜든 상이 위태롭기는커녕 몸에 푹 익어선지 아내는 미소를 짓는데, 공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세다. 아내는 날이면 날마다, 꼬박꼬박, 높이 우러러 밥상을 남편에게 올린다. 과연 어떤 남편이기에 저런 밥상을 받아먹을까.
이 그림은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를 알아야 재미있다. '밥상을 들어 눈썹과 나란히 하다'라는 말뜻은 중국 후한(後漢)의 학자 양홍(梁鴻)과 그 아내 맹광(孟光)에게서 나왔다. 맹광은 서른이 되도록 양홍 하나만 바라본 채 시집가지 않았다. 성품이 깨끗하고 행실이 맑은 양홍을 흠모한 까닭이다. 마침내 결혼하자 부부는 산으로 들어가 농사짓고 길쌈을 하며 청빈하게 살았다. 뒷날 부잣집에서 곁방살이할 때도 맹광의 남편 모심은 한결같았다. 아내는 밥상을 눈썹까지 들어 올렸고 눈을 치켜뜨지 않았다. 무릇 그녀의 극진한 공경은 마음에서 우러나왔다고 '후한서(後漢書)'는 전한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18세기 화원(畵員)으로 조선 세조와 영조의 어진(御眞) 제작에 동참했던 양기성(梁箕星)이다. 그림은 한눈에 봐도 채색이 아주 곱고 구성이 매우 단정하다. 정성을 잔뜩 기울인 작품인 것이, 정조가 감상하기 위해 특별히 공들여 만든 화첩 속에 들어 있어서다. 양홍은 살림살이에 보태기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지극한 맹광 덕분에 수학을 병행한 끝에 저술을 남겼다.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말마따나 '살아서는 한방에서 정이 두터웠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서 티끌이 되었던' 부부다.
하지만 맹광처럼 밥상 높이 드는 몸가짐을 요즘 아내에게 바라다가는 큰일 난다. 눈치코치 갖춘 남편들은 일찌감치 길들었다. 이제는 저런 밥상을 받지 않고 저런 밥상을 차린다./손철주: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