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休)
선운사 골기와 눈 녹은 물방울이
햇살을 등에 업고 아슬하게 떨어진다.
‘퐁’ 여여(如如)
물의 종소리, 그 울림이 아릿하다.
홈 밖에 튕겨 나온 금모래 알갱이가
옹당이의 고요에 살폿 발을 디민다.
순 은빛 해의 속니가
그늘 쪽에 반짝 뜬다.
몸 가여운 멧새 세넷 포로롱 날아 오가고
시나브로 눈은 녹아 옹당이에 떨어지고
고요 속
물의 종소리, 눈 감아도 환하다 /박옥위
추위가 누그러지면 눈 녹은 물이 곳곳에서 흐른다. 골골이 내리는 눈석임은 언 땅을 먼저 풀어주는 차갑고 다정한 눈물이다. 그럴 즈음 창호지를 비끼던 눈물은 참 눈부셨다. 눈 녹은 물이 유독 희고 맑게 느껴지는 것은 근처에 쌓여 있는 눈과 햇살의 비춤 때문이다. 그런데 절집 골기와의 눈 녹은 물은 더 투명하고 선명할 것이다. 더욱이 옹당이에 내리는 '물의 종소리'라면 오죽 낭랑하랴. 그 고요에 '순은 빛 해의 속니'가 반짝 빛나면 고요도 더 반짝이겠다. 그렇게 '퐁'을 받아 적고 다시 '여여(如如)'를 붙여 읽는 것은 또 다른 여일(如一)의 만끽일까. '휴~' 하고 쉬라는 '휴(休)'의 전언일까. 아무래도 눈 녹는 어느 기왓골 아래 한나절쯤 좋이 서봐야겠다.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