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밭 은 싸라기 뿌린 아침 밭에
이 또한 머리에 흰 서리를 인
사나이가 우두커니 서 있다.
기름진 나날과
달디 단 꿈을 엮고 나선 게 아니라
괴롭고 긴 밤을
몹시 시달리고 난 모습이다.
겹치는 재변에다
일손마저 굼떴던지
추수를 못한 이 밭은
빈 나락과 마른 풀만이 엉켜 뒹굴고
때 아닌 곳에 푸성귀 몇 포기
그의 철모르는 자식들처럼
한구석 푸르게 자라고 있다.
금은金銀의 햇발을 받아
얼어붙었던 대지는
사내의 가슴처럼
한 서린 입김을 내뿜는데
초동初冬의 매몰스런 바람 한 오라기
밭머리 고목古木가지의
마지막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며
사내의 눈에다
찬 이슬을 맺혀 놓았다.
/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