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歲寒)의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늦은 저녁을 끓이다
더 내릴 데 없다는 듯 찻잔 위로 내리는 눈
맨발의 비둘기 한 마리 쓰레기통을 파고든다.
돌아갈 곳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눈꽃 피었다 지는 부치지 않은 편지 위로
등 굽은 소나무 말없이 젖은 손을 뻗고 있다.
간절히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한
빈 역사(驛舍) 서성이는 파리한 눈송이들
추스른 가슴 한쪽이 자꾸 무너지고 있다.
/권갑하
세한(歲寒)의 추운 저녁이 계속되고 있다. 연말의 흥청거림도 추위를 다 녹이지는 못한다. 인적 드문 거리는 여덟 시만 돼도 불이 꺼져 어둡고 추운 밤이 계속된다. 경기가 얼어붙은 데다 폭설 예고도 잦아 얼음 세상이 더 길어질 것 같다. 이러면서 지구는 혹한(酷寒)으로 가는 건가, 문득 무서운 장면들이 스친다.
겨울날 역 근처는 바람의 날이 더 맵다. '맨발의 비둘기'처럼 '쓰레기통을 파고'드는 사람들로 주위도 을씨년스럽다. 벌써부터 동사(凍死) 소식이 들리는데,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은 이 매서운 추위를 어찌 날지 '추스른 가슴 한쪽이 자꾸 무너지'는 세밑이다. 아직도 바깥에 있는 이들은 언제나 안으로 들게 될지….
/정수자·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