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자전거
고장난 자전거, 낡아서 끊어진 체인
손잡이는 빗물에 녹슬어 있었네.
고장난 자전거,
한때는 모든 길을 둥글게 말아 쥐고 달렸지.
잠시 당신에게 인사하는 동안에도 자전거는 당신의 왼쪽 볼을
오른쪽 볼로 바꾸어 보여주었네.
자전거는 6월을 돌아 나와 9월에 멈추어 섰지.
바퀴살 위에서 햇살이 가늘게 부서지네.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는 당신이 만든 동그라미를 따라갔지.
우리는 그렇게 여름을 질러갔지.
고장 난 자전거, 9월은 6월을 생각나게 하네.
뜯어진 안장은 걸터앉았던 나를 모를 테지만,
녹슨 저 손잡이는 손등에 닿은 손바닥을 기억하지 않겠지만.
/권혁웅
시골 방앗간 같은 데서 담장에 기대인 수레바퀴를 간혹 볼 때가 있다. 무엇을 싣고 어디를 다니다가 이제 저렇게 짝도 잃고 담장에 비스듬히 기대어 찬 가을 햇볕에 나머지 뼈를 말리고 있는가. 수레의 바퀴는 우리 생애의 상징으로 맞춤이다. 멈추는 순간 넘어진다. 사랑도 그러하다고 이 시는 말한다. 쉬면 넘어지고 녹슬어 버린다. 앞 뒤의 둥그런 원 위에 앉아 서로 고개를 젖혀 입맞춤하며 달리던 기억들…. 그것도 6월에서 9월로 갔다니 에로틱하기도 해라. 하나 이제 체인이 빠지고 안장이 뜯어진 고장난 자전거가 됐다. 그것으로 지나간 삶과 사랑을 쓸쓸히 기념할 때 나도 내 사랑의 안장을 짚어본다. 지금은 11월이니 나는 사랑이 11월 같은 거라고 노래하겠다. 위아래 뻥 뚫린 사랑. 그래서 어쩌면 시원하고 개운한, 게다가 넓기까지도 한 사랑의 포대자루!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