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쾌적해지기 위해 지켜야 할 여덟 단계를 제시한 이덕무의 '적언찬(適言讚)'이란 글이 있다. 첫 단계는 식진(植眞)이다. 참됨을 심어야 한다. 사물은 참됨을 잃는 순간 가짜 껍데기가 된다. 아무리 닮아도 가짜는 가짜다. 본질을 깊숙이 응시해야 가짜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다음은 관명(觀命)이다. 운명을 살핀다 함은 오늘 할 일 오늘 하고 어제 할 일 어제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갖는 태도를 말한다. 점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음은 병효(病殽)다 . 마음을 다스려 잡다한 것에 현혹됨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색과 재물, 능변과 모략, 이런 것에 휘둘리면 방법이 없다. 넷째가 둔훼(遯毁)다. 헐뜯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재주는 이름을 낳고, 이름은 비방을 부른다. 재주를 뽐내면 해코지를 당하고, 그저 감수하자니 바보 같아 못 견디겠다. 그러니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타고난 본바탕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하다. 비방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는 이령(怡靈)이다. 정신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작용이 필요하다. 자연에서 정신은 편안해지고, 정은 경계에 따라 옮겨간다. 가을 물과 봄 구름을 보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생각이 영롱해진다. 여섯째는 누진(耨陳)이다. 열린 마음 위에 낡아 진부해진 것들을 끊임없이 덜어내야 한다. 그 빈자리는 새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신진대사(新陳代謝), 즉 진부한 것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시든 것[謝]을 새것으로 대신하는 작용이 활발할 때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진다. 일곱째는 간유(簡遊)다. 교유하는 벗을 잘 가릴 필요가 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배움을 북돋워주고, 재주를 장려해주며, 잘못은 따끔하게 꾸짖고, 가난은 함께 건네줄 그런 동심의 벗이 필요하다. 기생충 같은 무리는 뱃속에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등 뒤에서 헐뜯는다. 마지막 여덟째는 희환(戱寰)이다. 말 그대로 우주 안에서 즐기며 노니는 것이다. 내 앞에 내가 없고, 내 뒤에도 나는 없다. 조급해할 것도 성낼 일도 없이 하늘을 따라 즐길 뿐이다. 여덟 단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삶을 즐기고, 내 분수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조심조심 지켜 여유롭게 노닐며 한 세상을 건너가자.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