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외통프리즘 2008. 5. 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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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 -말마디시비-

1310.000820 외가 -말마디시비-

'외가'와 '친가'라는 말은 유교적 윤리로 보아 여인들의 예속적 신분을 읽을 수 있고, 이는 또 남자를 주로한 부계 혈통의 축을 고정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의도된 소산인 것 같다.

 

그런데 일단 시집을 오면 외(外)인이 아니라 '안(內)사람'이 되고 혈통을 지키는 남자는 '바깥(外)'주인 이 되는, 말하자면 문화적으로나 전통적 사고에서나 어정쩡한 수식적 대명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외척이라 하여서 그 지위를 그 집안의 중심축에서 멀리하는 뜻이 있다면 굳이 외가라 할 것이 아니라 권한이 없는 ‘안사람’ 의뜻인 ‘내가’라 해도 안 될 일이 없지 않는가.

 

'안사람'은 바깥일을 하는 남자들의 사회적 활동을 바탕으로 하여 일컫는다고 하드래도 서로 상치되는 말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할 뜻을 담아 부른 이유는 다분히 의도가 숨어 있다.

 

권력과 신분의 보호유지를 위해서는 외가일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정서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안사람'이라 칭할 밖에, 여기서 나는 구시대의 이중적 가치혼돈을 느낄 수 있고, 바로잡지 못하는 식자층과 사회적 신분유지를 위해 고뇌했던 과거의 편린을 찾아볼 수 있다.

 

'안사람' 집을 '외가' 즉 ‘바깥에서 온’ 사람 집으로 한다면 ‘바깥일을 하는 사람의 집은’ '내가' 즉 '안사람의 집'으로 해야 딱 들어맞는 말이 될 듯싶다.

 

이 경우 혈통적 의미를 중히 여겼고, 혈통과는 상관없는 사회적 활동을 기준으로 볼 때의 신분상 의미는, 일반서민으로는 당치 안은 말이다. 그래서 서민은 사회적 일반적 활동을 그 의미로 담아서 안사람의 친가를 안사람의 집 즉 내가라 해도 될 듯싶다. 결혼하지 않은 애들은 어머니의 친정집을 ‘우리 내가'라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기야 글이나 말이 다 지배층에서 일반 대중으로 하향 보급되는 틀은 고금에 같으니 이제 시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기 처를 밖에서 온 사람이라 하여 외인 즉 ‘바깥사람’이라 하면 이야말로 큰 혼란이 올 뜻도 하다.

 

-외가 단상-

 

지난날의 외갓집을 생각하면서, 그때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이 참에 생각나서 중얼거려봤다.

 

 

누구에게나 '외가'는 있게 마련이고 미성(未成)일 때, 더 잘라 짚으면 철나기 전의 외가 집 나들이가 많았을 것이다. 또 그때의 그리움이 유달리 깊게 어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후의 나들이는 '처가'요 미성일 때는 '외가'인데, 외갓집 그림은 꿈속에 있고 '처갓집' 그림은 생시에 다가오니 어찌된 일인가. 이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망각에 있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처가는 무촌의 집이요 외가는 일촌의 집임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무촌의 집이 꿈속에 어려야 할듯한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촌수와는 무관한 것 같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모든 것이 아름다우니라.’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것’중에는 희로애락이 함께 담겨 있음인데 희락만이 있을 어린 시절의 먼 꿈이야 오죽하랴. 정녕 외가야말로 마음의 고향이고 어머니의 품안이다.

 

누가 시집을 가는지 누가 장가를 가는지 기억조차 없는 잔칫날의 외갓집 나들이는 잊히지 않는다.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도록 지정된 방이다. 그 방에 있는 서랍 두 개 달린 키 큰 책상과 의자가 우리가 비비대고 놀아야하는 단 하나의 놀이기구이자 장난감이 된 셈이다.

 

책상 밑에 기어 들어가고, 의자를 밀어 가두고, 한편에서는 울고 한 아이는 웃고 또 다른 아이는 손뼉 치고, 그러면서 창호지는 미어진다. 드디어 치고받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외숙모였으리라. 문 앞이 꽉 차 보인 치마폭이 점점 내 눈앞으로 넓혀서 방안에 가득 차고 내 눈은 흰 장막에 가려지고, 머리를 당겨서 손으로 감싸 않으니 나 또한 양팔로 매달리다시피 다가섰다. 평온하고 아늑해졌다.

 

혼자 있게 된 나는 또 발동했다. 이번에는 책상서랍 안이 궁금하다. 양은 손잡이가 달린 한쪽 서랍이 여덟 손가락이 들어가기에 걸맞고, 두 엄지는 양 손톱이 서로 기대어서 내 눈과 마주치고 그 두 손톱이 예쁘게 웃음 짓고 유혹한다. 조금씩 내 머리는 옆으로 돌아가고 내 눈은 흰자위로 가득 찼다. 아직은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 '댕겼다'. 희고 긴 마른 삼이 서너 개가 있고 잡다한 종이쪽지가 있을 뿐이다. 닫았다.

 

 

삼은 신선이 되는 약으로만 알고 있는 나다. 이 삼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머릿속이 가득해 지면서 조용히 한쪽 구석에 기댄 채 힘없이 등으로 미끄럼을 탄다. 먹어서 갑자기 흰 수염이 나고 길어지면 어떻게 하나? 아니다. 먹고 기운이 세어져서 아버지를 돕고 다른 애들을 혼 내주자! 싶기도 한데 저것이 한 입에 들어 갈 것 같지도 않고 더구나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갈 것 같지도 않다. 만약 그 귀한 삼이 없어진 뒤, 아까 들려서 나를 감싸 안았든 숙모님이 아신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도무지 생각이 범벅이 되어서 깜깜해질뿐이다.

 

애들이 또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것을 먹으면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해내고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에 꽉 차있었으나 단행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체념할 밖에.

 

 

지금도 그때 그 삼은 신령한 삼이고 장수의 힘을 지닌 별나고 귀한 보배같이 생각된다. 그때까지 말만 들었지 삼을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으니 처음 보는 낯 설은 이 괴물, 희고 마른 나무 뿌리 같은 것이 인삼임에는 틀림없었다. 골이 진 그 속에는 누런색이 더욱 신비해 보이기도 했으니 그럴 테고, 백지 장 같은 내 마음에 새긴 삼 그림이니 세상에는 없는 신령한 약으로, 묘약으로 자리 잡고 남아 있으면서 어머니와 외숙모와 외갓집을 내 머리 속에 지키고 있나보다.

 

나는 형들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까지지도 발아지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숫기도 없었다.

 

이틀째 한낮이다. 동네의 외갓집 일가 형들에게 이끌려 뒷동산에 올랐다. 남의 묘 자리에 그들과 함께 넓게 둘러앉혀진 다음, 그중 한 큰형이 내게 다가와서는 내 귀에 입을 대고 꾀어댄다. 저기 저 쬐고만 녀석이 너를 촌놈이라고 흉을 봤단다. 재는 네가 이길 수 있으니까 혼 좀 내 주라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우리 동네는 기차도 다니고 가끔씩 '도락꾸(트럭)'도 신작로로 다니는데 촌놈이라니, 여긴 기차도 안 다니고 '한길'도 없어서 자동차도 없는데, 또 학교도 없고 '순사'도 없는데, 누가 누구보고 촌놈이라느냐.

 

임전태세는 즉각 발효했다.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고 통수권자의 지휘명령도 소용이 없었다.

 

그 키 작은 애는 나이배기인지는 몰라도 제법 달아져 보였다. 경력도 있는 듯이 의젓이 묘 터의 넓은 잔디 밭 한가운데로, 이미 나와서 뒤를 흘끔 흘끔 보고 웃기도 한다.

 

그러나 사나이 대장부가 꼬리를 사릴 수는 없지 않는가? 나아간다! 양발을 벌리고 두 주먹을 허리에 차고 내려다보며 일갈한다. 야! 촌놈은 네가 촌놈이지 누구보고 촌놈이라 하느냐?

 

그 다음 순서는 큰 형인 것 같은 한 첩자의 각본 대로다. 안다리가 걸리고 하늘의 구름이 올려다 보이는가 싶더니 또 한 순간은 잔디가 눈앞에 펼쳐지고 울분에 찬 파열음이 주위의 또래웃음과 박수로 뒤섞였다.

 

 

판결은 첩자의 몫이다. 둘러앉았던 한 형에 의해서 뜯어 말려진 후에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분하고 억울해하는 내 손을 곡 잡고 ‘재가 촌놈이야’ 그러나 분을 못 삭힌 나는  여전히 그 애 쪽으로 팔을 뻗어 달려들려고 한다.

 

상황은 끝났으나 이번에는 내 옷 몰골이 말이 아니다. 첩자인 그 큰형은 부지런히 내 옷을 털고 비비고 문질러서 감추려했다. 눈물 콧물 닦아주고는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아무 말이 없다. 나 또한 일러바치지 않았으니까.

 

잔치가 끝난 후 그 큰형은 일단의 꼬마들을 훌륭히 한나절씩이나 무리 채 소개(疏開)했던 공으로 아마도 그 집안의 ‘금성무공훈장’이래도 탔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시골 외갓집에서의 한 판은 내 촌스런 행동으로나마 한나절을 때울 수 있었다.

 

또 가고 싶다. 이번엔 한나절을 때울 것이 아니라 한 달쯤 머물면서 흘러간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외통-

-미덕이 인도하지 않는 지식은 어리석다.-G.허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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