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방골

외통프리즘 2008. 6. 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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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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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 문을 뚫고 들어온 햇살이 방안 가득히 퍼졌다.

 

햇빛은 할머니의 밥상 위를 비추어서 상 모서리가 반짝거리고 있다. 방안은 이미 들여놓은 무쇠 화로가 뿜는 온기로 가득히 훈훈하다.

 

할머니의 양손이 소매 속을 벗어 나와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구 중 새벽을 제일먼저 여시는 할머니의 곱게 빗은 흰머리가 가닥가닥이 햇빛에 들어나고 있다. 할머니는 줄음 진 얼굴을 양손으로 한번 쓸어내리시고는 손을 비비며 양손의 마디를 엇바꿔가며 펴고 주무르신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손마디가 햇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 굵어 보인다. 화로 불에 녹인 손이 손가락 마디마저 펴게 할 수는 없는지, 마주한 아버지의 눈길이 할머니의 손마디에서 떨어지지 않으신다.

 

할머니를 향해 앉으신 아버지의 네모자비 겸상엔 언제나 내가 마주하고, 할머니와 비스듬히 비끼고 앉아서 할머니와 아버지의 나누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데 까지 들으면서 조반과 저녁을 먹는다.

 

조반을 드실 때는 늘 어젯저녁에 마을에서 돌던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더러는 품앗이 어우르려 모인 자리에서 들으셨거나 상포계모임에서 들으신 이야기도 빠짐없이 할머니께 들려주신다.

 

몸에 오래 밴, 할머니의 귀 막고 눈감고 사시려는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아버지다. 집밖으로 이끌어내시어서 무엇이든지 관심을 갖도록 하시려는 아버지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짐작케 했다.

 

상을 받은 할머니의 얼굴은 햇살을 받아서 줄음이 많이 펴지셨고 오목하신 뺨도 메워져서 한결 생기 있어 보였다. 그러나 밥을 떠 넣으신 후 아래턱이 몹시도 깊게 아래위로 움직이시는 모습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이 모습이 또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곤 했을 것이다. 이따금씩 입안의 음식을 고비 넘기시려 머리를 끄덕이신다. 쪽진 머리의 은비녀가 아침햇살을 받아 빛을 내면서 그중 작은 한 토막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태백준령의 한 작은 가지자락에 숨어서 소나무와 밤나무 숲으로 가려있는 ‘송방 골'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이야기라면서 할머니께 들려주신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일단의 괴한에 의해서 마을청년 몇이 손이 뒤로 묶인 채로 가마니에 처넣어지더니 짐짝같이 ‘도락구(트럭)’에 실려서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단지 그 마을이 우리 면의 ‘보안서’로부터 제일 멀고 태백산으로부터는 가장 가깝다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이 소문은 멀리 가거나 오래가지 못했다. 남아있는 가족에게도 공포와 협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조무래기들에게도 함구의 자물통이 채워졌다. 모름지기 남쪽의 ‘서북청년단’과 연계됐대서, 그야말로 귀신도 모르게 잡혀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 밥상머리의 내 눈동자가 구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우리들의 입막음에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지, 말씀을 중간마다 끊으시고 우리를 하나하나 눈 맞추면서 입에다 손가락을 대셨다.

 

할머니의 마음을 읽을 양으로 수저를 놓고 몸을 틀었다. 할머니의 눈망울을 빤히 들여다보는 나를 눈치 채셨는지 이내 소매에 손을 집어넣어 손수건을 꺼내서 눈에다가 대신다.

 

할머니의 마음은 아프기 시작 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친정이 ‘송방골’보다 더 태백산과 가깝고 아예 태백산줄기 속에 있는 ‘회양군 신안면’이기 때문이다.

 

조카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고, 그렇다고 안부를 물을 길도 없는 처지의 먼 곳이기에, 할머니는 어쩜 단 하나 밖에 없는 오라버니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멀리 어렸을 때 친정집으로 달려가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의 손에서 수저가 떨어지듯 밥상 위에 놓이며 다시 손수건이 눈가에 올라갔다. ‘송방골’ 이야기는 그 후 실려 간 사람들의 생사를 모른 채 할머니의 눈물만 짜냈다.

 

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효심 때문에 잠깐 할머니의 마음속 저 밑에 가라앉아서 좀처럼 떠오르지 않던 어린 시절과 가 보아도 옛 같지 않은 고향친정 마을을 떠올리게 했지만, 한편 할머니로 하여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깊이 아시게 함으로서, 함께 살며 숨 쉬고 계시다는 보람을 심어주신 아버지의 깊은 효심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송방골’ 청년들의 후문도 궁금하다. /외통-

인류의 모든 죄악 중에 가장 큰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밝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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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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