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 아홉 자 두 칸을 붙여서 하나로 하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장식하지 않은 통짜 방으로 돼 있다. 제일 윗목에 두꺼운 통나무 판자 선반을 매어서 가재도구 일체를 얹어놓는, 기막힌 설계다.
다른 방 세 칸은 남을 세주고 만다. 이 큰방 밑에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두 개의 함과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갖고 온 반닫이 두 개가 있다. 그리고 책궤가 세 개뿐인 단출한 방 살림이지만 그 배치는 기막히다. 선반을 다락같이 매어놓고 그 밑에 모든 집기를 벽에 붙여놓고 이부자리와 옷가지는 그 속과 그 위와 언저리를 빈틈이 없이 채워서 입체적으로 배치되었으니 그 외의 방바닥 평면 위에는 아무것도 놓을 수 없다.
예외 없이 누나와 내 책꽂이도 작은 선반 형태로 만들어져서 윗목 한구석에 매달려 있다. 내가 서서 손이 닿을 곳만큼의 높이에 설치되어 있다.
철이 들고는 누나의 입학을 시기해서 같이 가겠다고 며칠씩 따라나서는 내게는 책상이란 아무 소용도 없는, 무의미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입학하고 삼사 학년이 되면서 옆집 내 또래와 비교가 되면서 적이 불편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매달려도 소용없고 울어도 소용없다. 이미 누나는 체념한 지 오래인가 보다.
내 뜻은 오 학년 때야 이루어졌다. 그러나 내 기쁨이 어버이의 자식에게 드리는 따뜻한 마음을 채워 드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살아 계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방은 갈 때로 만든 자리로 깔려있고 휑하게 트여있다. 세 벽은 여닫이 살 문과 벽으로만 차 있고 장식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애벌 벽만을 바른 흙냄새가 흠뻑 젖은 새집이다.
어린것들을 키워야 하는데, 설쳐대는 어린것들에 어른이 매달릴 시간은 없고, 그러니 어린 자식들의 손이 닿지 않을 곳에 모든 걸 놓아두어야 함은 물론이다.
낮에는 벼 말리는 건조실로 쓰이고, 때론 터울을 이어 태어날 동생들의 산실이 되고, 봄가을로 이은 길 삼 때 얼레를 설치해서 실타래를 얹고 풀어야 하고, 겨울에는 ‘씨앗 틀’을 설치하고 연이어 물레를 설치해서 무명실을 뽑아야 하고, 새끼와 가마니를 짜야 하고, 짚신도 삼아(지어)야 한다. 방은 다목적 다기능의 생활공간이자 가내 수공업 공장이다.
이제야 얘기할 수 있는 떳떳한 집안 사정이다. 다른 집보다 모든 일을 곱으로 해야만 불어나는 식구와 그들 장래에 대한 걱정을 덜고, 모든 조건을 백분 활용해야만 어른들의 절박함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뜻이 곳곳에 배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친구들에게 기죽어서 말 못 했던 우리 집 살림을 지금은 자랑스레 여긴다. 어릴 때의 아픔을 보상받는다. 감사하고 은혜로워 눈앞에 안 계신 부모님을 우러른다./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