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외통넋두리 2008. 7. 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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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1787.010122 누나

 

지붕위의 박 넝쿨 잎이 축축 늘어지는 오뉴월 한 더위에도 봉당은 사방에서 새어드는 소슬바람과 흙바닥의 냉기가 어우러져서 그런 대로 견딜만하다.

 

자리를 들고 들어가는 누나를 따라서 들어갔다. 장터거리의 기름집 딸인 누나친구가 서 있었다. 누나가 들어서자 기름집 누나는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쳐다보며 손을 뻗는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선반 위에 늘어 얹힌 크고 작은 그릇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세 겹으로 층층이 매인 넓고 기다란 선반 위에 크기순서대로 겹겹이 쌓아 나란히 놓이고 형형색색의 접시와 쟁반이 싸여있는 것이 아마도 장사집같이 보였나보다.

 

바른대로 말하자면 얼마 후에 우리 집이 여인숙 영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결혼예식도 얼마든지 치를 수 있겠다’며 기름 집 누나가 말했다.

 

‘아니야 턱도 없이 부족 할 것이야’ 담담히 누나가 말한다.

 

아마도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서로 한마디씩은 일본말로 주고받는걸 보면 내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나 보다. 그러기에 옆에 내가 서 있는데도 서슴없이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가. '국민'학생인 내가 ‘결혼’ 이란 무슨 뜻인지를 알 턱이 없으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제까지 누나를 기리며 이 한 순간의 장면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말뜻을 뒤늦게 되씹어 보면서, 우리누나의 심경과 기름 집 누나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다져지고 굳어져서 하나의 변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사진이 된 때문이다.

 

그때 어린 내게 비친 두 누나는 새까만 눈과 단발머리를 갓 면하고 꼬리 짧은 뒷머리를 묵었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받은 두 마디의 말이 이토록 내 가슴을 울리는 것은 누나의 생이 평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동란 전에 군에 있는 총각과 중매로 약혼을 했었는데 그만 전쟁이 나는 바람에 예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던 중 이미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 나와는 영영 만날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는 얘기를 나보다 이 년이나 늦게 남쪽으로 오신 재종형님을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가정(假定)을 한다. 누나가 피어보지 못한 꽃으로 이승을 등지고 말았을 것을 생각하니 봉당에서 한 두 누나의 말이 새록새록 선명해지는 것이다.

 

결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을 누나가, 모든 것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누나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인물의 누나가, 꽃 봉우리로 한 많은 이승을 하직했다니 그 한을 어떻게 풀어 주어야 할 것인지 정말 애절할 마음 비길 데가 없다.

 

 

그래도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지내던 어느 해의 달력의 인물사진에 누나의 얼굴과 닮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때 그 달력의 얼굴이라도 따로 간직하지 못한 것이 지금은 새로운 후회거리로 남고 있다.

 

끝날 줄 모르는 내 망향의 애절함을 안타깝게 여긴 아내의 만류로 포기했던 그 달력.보고 싶을 때마다 그 달력의 얼굴이라도 보면서 누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아쉽고 억울하다. 지금은 영영 모습을 그릴 수 없어서 머리만 털고 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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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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