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바닷물을 끓이며 힘차게 솟았다. 벌써 우리가 쓴 모자챙에 손바닥을 붙여야 할 만큼 뜨겁고 강렬하다. 유월의 태양은 이미 바다 위를 벗어나 산등성을 오르고 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어느새 사라지고, 풀은 햇살을 받느라 목을 젖히고 가슴을 펴서 태양을 향해서 하늘거린다.
그늘진 곳의 운동장 흙은 아직 물기가 남아있어 흑갈색으로 촉촉하다. 하지만 햇빛이 닿은 양지의 흙은 벌써 알알이 부서져서 흩어지고 회색으로 돌아 교사의 지붕 그림자를 따라서 일직선으로 그어져 흑갈색과 회색으로 나뉘어 버렸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 조회를 위해 ‘갈까마귀’ 같이 모여서 지껄이든 떼거리는 어느새 땅바닥이 가지런히 드러나게 줄지어 섰다.
이윽고 선생님들의 줄이 생겼고 ‘아침은 빛나’게 노래 부르며 조회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이색 행사는 새로 부임한 수학 선생님의 첫선을 보는 날이다.
부임 인사 소개를 받은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오셨을 때 내 눈이 부시도록 비쳤다.
넓적한 이마에 알맞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지만, 방향은 멀리 떨어진 갓 줄이었기에 정면에서 바라보는 당숙의 얼굴은 아닐지라도 자그마한 키에 당당해 보였다. 반듯한 이마의 완만한 곡선이 강렬한 태양 빛을 받아서 내 눈에 퉁겼다. 아마도 완만한 곡선의 이마가 받아내는 태양 빛은 나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빠짐없이 받았으리라. 이마의 빛은 당숙의 몸 움직임과 상관없이 계속 빛나고 있었다. 당숙의 이마는 팽만한 풍선같이 고르게, 반듯한 까닭이었기에 전교생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었을 것이다.
훨씬 조숙해 보이는 당숙은 나보다는 겨우 여섯 살 위였지만 학교에서는 사제(師弟)의 사이가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 당숙은 수학을 담당하신단다.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행동반경이 이렇게 좁았고 이렇게 들일에만 초미의 관심을 쏟았을까를 생각하면서 당숙의 부임을 별도로 축하해 드리지 못했다.
나도 어지간하게 맹추였나 보다, 하고 지금에서야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되씹어 본다, 그때를. 반짝이는 이마의 햇살을 눈부시게 느끼면서 생각했다. 태양의 빛을 적수공권으로 학생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는 천부적 이마와 수학적 두뇌를 감싸 안은 이마의 기하학적 팽만, 이것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게 예정된 일들인 것 같아서 아찔해졌다.
당숙은 햇빛을 나누어주고 나는 그 빛을 받고 있다. 당숙은 습기가 머문 땅을 딛고 서 있고 나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마른 땅을 딛고 서 있다.
이어서 번개같이 스치며 섬광처럼 빛나는 당숙의 이마 빛이 마른 땅을 딛던 나와 젖은 땅을 딛던 당숙, 마른 땅을 딛던 우리 아버지와 젖은 땅을 딛던 작은 집 큰아버지, 마른 땅을 딛던 우리 할머니와 젖은 땅을 딛던 작은집 할머니, 마른 땅을 딛던 우리 할아버지와 젖은 땅을 딛던 작은 집 할아버지, 마른 땅을 딛고 서 계시며 맞은편을 바라보시는 자자손손과 젖은 땅을 딛고 서 계시며 우리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자자손손의 환상으로 끌고 갔다. 이어 환청을 경험했다. ‘얘야 우리는 언제 작은 집처럼 반짝이느냐’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열심히 해서 네가 집안을 일으켜라.’라는 무언의 호소를 늘 의식하며 이중적 생활을 해왔든 나다. 학교를 포기하지 못하는, 그것은 공부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내 생각이었고 또한 아버지의 말씀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줄곧 들일을 돕는 일과 병드신 아버지를 돕는 걱정을 해야만 했다.
이제 모두가 부질없는, 벌어졌어도 극과 극으로 벌어진 현실을 아무리 지난 접점을 찾아서 이어보려 한들, 동아줄 같은 현실의 끈이 아물거리는 꿈같은 과거의 상사(想思) 줄을 끌어서 엮어보려 한들, 될 일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멍해진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