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숙

외통넋두리 2008. 7. 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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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숙

1863.010314 당숙

 

태양은 바닷물을 끓이며 힘차게 솟았다. 어느새 중천에 이른 태양은 손바닥을 모자 창에 붙여야 하늘을 볼만큼 뜨겁고 강렬하다. 이렇게 유월의 태양은 이미 바다 위를 벗어나 산등성을 오르고 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어느새 사라지고, 풀은 햇살을 받느라 목을 제치고 가슴을 펴서 태양을 향해서 하늘거린다. 그늘진 운동장의 흙은 아직 물기가 남아있어 흑갈색으로 촉촉하다. 하지만 햇빛이 닿은 양지의 흙은 벌써 알알이 부서져서 흩어지고 회색으로 말라버렸다. 마당은 교사의 지붕그림자를 따라서 일직선으로 그어져서 흑갈색과 회색으로 나뉘어 버렸다.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 갈까마기처럼 모여서 지껄이던 학생들은 어느새 땅바닥이 가지런히 드러나게 줄지어 서더니 이윽고 선생님들의 줄이 생겼고 ‘아침은 빛나....’라 노래 부르며 조회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아침 행사는 새로 부임한 수학선생님의 첫 선을 보는 날이다. 부임인사 소개를 받은 선생님이 교단에 올라오셨을 때 우리의 눈이 부셨다.

 

 

알맞게 어울리는 넓적한 이마와 그을린 구릿빛 얼굴이 당숙임을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갓 줄이었기 때문에 정면에서 바라보는 당숙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키는 여전히 당당해 보였다.

 

완만한 곡선을 이룬 반듯한 이마가 강렬한 태양 빛을 받아서 내 눈을 부셨다. 이렇게 당숙의 이마가 받아내는 태양 빛을 나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앞으로 빠짐없이 되받을 것이다.

 

이마의 빛은 당숙의 몸 움직임과 상관없이 계속 빛나고 있었다. 당숙의 이마는 팽만한 풍선같이 고르게, 반듯하였기에 전교생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었을 것이다. 훨씬 조숙해 보이는 당숙은 나보다는 겨우 여섯 살 위였지만 학교에서는 사제(師弟)의 사이가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당숙은 수학을 담당하신다고 한다. 불현듯 오늘이 있기까지 나의 행동반경을 되돌아본다.

 

이렇게 좁고 한정된 곳에서, 거기에서도 가사를 돕는다는 핑계로 들일에만 관심을 쏟았던 나를 생각하면 당숙의 부임은 나를 점점 미미하게 만들면서 별도로 축하해 들이지 못하게끔 위축되게 했다. 나도 어지간하게 얼뜨기였나보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반추해본다, 그때를.

 

반짝이는 이마의 햇빛을 눈부시게 느끼면서 생각했다. 태양의 빛을 적수공권으로 학생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수 있는 천부적 수학적 두뇌를 감싸않은 이마의 기하학적 팽만, 이것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게 예정된 일들인 것 같아서 아찔해졌다.

 

당숙은 햇빛을 나누어주고 나는 그 빛을 받고 있다. 당숙은 습기가 머문 땅을 딛고 서있고 나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마른땅을 딛고 서있다.

 

이어서 번개같이 스치며 섬광처럼 빛났다. 당숙의 이마 빛이 마른땅을 디딘 나와 젖은 땅을 디딘 당숙.  마른땅을 디딘 우리 아버지와 젖은 땅을 디딘 작은 집 큰아버지, 마른 땅을 디딘 우리할머니와 젖은 땅을 디딘 작은집 할머니, 마른땅을 디딘 우리할아버지와 젖은 땅을 디딘 작은 집 할아버지의 환상에 이끌렸다. 

이어 환청을 경험했다.  ‘얘야 우리는 언제 작은 집처럼 반짝이느냐’ 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열심히 해서 네가 집안을 일으켜라’ 는 무언의 호소를 늘 의식하며 이중적 생활을 해왔던 나다. 학교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내 생각이었고 달리생각하면 아버지의 권유 말씀의 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줄곧 들일을 돕는 일과 병드신 아버지를 돕는 걱정을 해야만 했다.

 

 

이제 모두가 부질없는, 벌어졌어도 극과 극으로 벌어진 현실을 아무리 지난 접점을 찾아서 이어보려 한들, 동아줄 같은 현실의 끈이 꿈같이 아물거리는 과거 사유의 줄을 끌어서 엮어보려 한들, 될 일이 아닌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멍해진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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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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