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셋방에서 처음으로 동침한 뒤 지난 9월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동반자살 하기 전까지,꼭 60년간 그들은 한 쌍의 밤꾀꼬리처럼 정답게 살았다.
이 책은 84세의 남편이 스무 해 넘게 불치병과 싸운 83세의 아내에게 보낸 연애 편지다. 고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철학자다. 렉스프레스지(紙) 기자를 거쳐 누벨 옵세르바퇴르지(誌)를 공동 창간했고, 스승이자 친구였던 장 폴 사르트르가 별세한 뒤 그가 창간한 레탕모데른지(誌)를 이어받았으며, ‘생태주의’를 창시했다.
그는 비엔나에서 유대인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대전이 터지자 부친은 스위스를 여행하던 아들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명했다. 16세에 망명객이 된 고르는 로잔 대학에 다녔다.
전공은 화학공학이었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실존주의였다. 뿌리 잃은 자의 고독과 살아 남은 자의 환멸이 그를 짓눌렀다. 사랑이 그를 구했다. 발랄한 도린을 처음 봤을 때 그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청년들은 도린에게 귀엣말했다. “홀린 듯 당신을 보는 저 남자(고르)는 무일푼의 유대인”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게 될 남자는 그들이 아닌 그였다.
둘을 이어준 것은 외로움이었다. 도린은 일찍 부친을 잃었다. 모친은 그녀를 대부(代父)에게 맡기고 가출했으며, 간간이 딸을 보러 올 때마다 돈 때문에 대부와 다퉜다. 전쟁 통에 도린은 배급 식량을 고양이와 나눠 먹으며 혼자 살았고, 종전 후엔 유럽을 방랑했다 로잔에서 고르와 만났다.
책에서 고르는 기억을 복기하며 생의 매 순간을 다시 살았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오만을 사죄하고, "당신은 내게 삶의 풍부함을 알게 해 주었다”고 감사했다. 1974년 도린이 근육 위축병에 걸리자 고르는 신문사를 은퇴하고 그녀와 함께 은거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