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수녀의 맑은 편지 ]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법정스님의 밝은편지 ]
이해인 수녀님께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 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