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弔文)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살아서 눈 어두운 동네 노인들 편지 읽어주고
먼저 떠난 이들 묏자리도 더러 봐주고
추석 가까워지면 동네 초입의 풀 환하게 베고
물꼬싸움 나면 양쪽 불러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심판 봐주던
이 동네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슬프도록 야문 길이었다.
돌아가셨을 때 문상도 못한 나는 마루 끝에 앉아,
할아버지네 고추밭으로 올라가는 비탈,
오래 보고 있다. 지게 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가 오르내릴 때 풀들은
옆으로 슬쩍 비켜 앉아 지그재그로 길을 터주곤 했다
비탈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던 그 길은
여름 내내 바지 걷어붙인 할아버지 정강이에
볼록하게 돋던 핏줄같이 파르스름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비탈길을 힘겹게 밟고 올라가던
느린 발소리와 끙, 하던 안간힘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그만
길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풀들이 우북하게 수의를 해 입힌 길,
지금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 위로
조의를 표하듯 산그늘이 엎드려 절하는 저녁이다.
(안도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