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할머니 수유동 성당에서 사목을 할 때의 일이다.
환자 봉성체 나가는 날은 점심을 거르기 일쑤고 경험이 부족한 나는 바쁘게 허둥대기만 했다. 환자 방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가 비위 약한 나를 괴롭혀 그 시간이 되면 몸이 무거워지기도 했고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그런 사소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 편찮은 중에도 기쁜 마음으로 사제를 맞이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천진스런 미소가 내 고통을 가져간 것 같다.
그중 한 할머니는 10년이나 병상에 계셔서 성사생활을 하지 못하셨는데, 옆집에 교우가 이사를 오게 되어 우리에게 연락이 닿았다. 그분은 10년 만에 고해성사를 보신 후 성체를 영하시고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그러더니 돌아오려는 나에게 작은 소리로 "신부님, 다음에 오실 때 요구르트 한 개만 사다주세요. 먹고 싶은데 자주 소변본다고 어멈이 사주질 않아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그 후부터 봉성체 갈 때마다 요구르트를 몰래 사다 드렸다. 그러면 온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밝아지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위독하시다 하여 방문해서 병자성사를 드렸는데,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은 지폐 2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신부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불쌍한 사람에게 써 주세요."
나는 그분이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부유한 할머니라고 생각했다 /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