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그날을 향해
주님, 매일 매일을 당신 앞에 가져갑니다. 당신 이외의 것들로 가득한 많은 시간들, 오늘 하루를 당신께 바칩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가엾게 여기시는 하느님.
제 영혼을 보소서.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와 쓸데없는 지껄임과 교만과 호기심과 자만을 가득 실은 채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행렬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과 사라지지 않는 당신의 진리 앞에서 제 영혼은 마치 이 세상의 초라한 재물을 사고팔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시장판 같습니다.
끊임없는 소란 속에서 저와 뭇사람들과 세상이 스스로 쓸모없음을 보여주는 시장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 제 삶이 이렇게 계속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어찌해야 제 일상이 당신 날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물과 더불어 지내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에 저를 당신 곁에 있게 해주시는 이는 당신이십니다. 당신 안에서 다양성은 하나가 되고 흩어진 것들은 모입니다. 당신 사랑 안에서 온갖 외형적인 것들이 내적인 것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오나 이 사랑을 제게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뿐, 당신 안에, 당신 사랑 안에 피신할 때에 제 속된 일상은 당신 사랑 안에 변화됩니다. 사랑이신 주님, 제게 당신 사랑을 주소서. 당신 자신을 주소서. 모든 날들이 영원한 그날을 향해 성숙되게 하소서. - 칼 라너
정성들여 살게 하소서
나이 드는 것에 감사 할 수 있으므로 나의 삶을 기쁨으로 엮게 하소서.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 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옆에 있는 마음의 지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므로 정말로 기쁜 웃음을 갖게 하소서
정직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는 떠올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삶에 자족하게 하시고 나의 미래를 설레임으로 맞을 수 있게 하소서
완벽함을 추구하여 빈틈없는 삶보다는 조금 부족하여도 넉넉함으로 삶의 향기를 갖게 하소서. 어차피 인간은 완벽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 어우러사는 삶을 배우게 하소서.
인생의 큰 흐름이 소망과 감사로 이루어져 있기에 얼마간의 슬픔이나 우울 따위는 그 흐름 속에 쉽게 녹아 없어질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나의 부족에도 이런 행운과 함께 삶을 바라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하심을 감사하며 더 나이 들어도 깊어지는 기쁨과 소망의 골짜기에 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이 들었지만 맑고 상큼한 마음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받는 일에 마음을 다하면서 삶을 감사함으로 소중하게 엮어가게 하소서
죽음을 기억하자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고 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잘 죽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평가는 살아서가 아닌 죽은 후에 내려지는 법이다.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트라피스 수도원에서도 수도자들에게 허용한 딱 한 마디가 있는데 바로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자는 뜻이다. 이처럼 죽음이란 중요하며, 잘 죽기 위해선 무엇보다 잘 살아야 한다.
생과 죽음은 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 인생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언젠가 사람의 목숨을 볼펜의 잉크에 비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잘 나오는 볼펜을 마구 쓰다보면 중요한 것을 써야 할 때 잉크가 다 떨어져 쓸 수 없는 것처럼, 목숨도 아무렇게나 살다보면 수명이다하니 값지게 살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하루하루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살면 틀림없이 보람되고 풍요한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는 게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도 항상 죽음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피정을 통해 관속에 누워보는훈련이나 유언장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하고, 영정사진을 모으기도 한다.
소탈하고, 웃는 모습의 사진을 골라 액자에 넣어둔 게 벌써 9장이다. 그리고 환자나 죽은 이를 방문할 기회가 많은데, 같이 병상에 있거나 관속에 누워 있는데도 표정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평온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마다 내 모습이 평화롭길 간절히 바란다. 이렇게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려고 하는데도 막상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왜 그렇게 잘못 살았을까?' 하는 반성과 후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시인 구상 선생의 "앓아누워야만 천국행 공부를 한다."로 시작하는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이란 시를 읊으며, 다시 한번 죽음을 기억하자고 다짐한다. 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이들에게 내가 준비해둔 영정사진 속의 내가 '친구들, 와줘서 고맙네.'라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