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시 두레 2011. 2. 16. 11:17

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나무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사랑도 나무처럼

사계절을 타는 것일까

물오른 설레임이

연두빛 새싹으로

가슴에 돋아나는

희망의 봄이 있고

태양을 머리에 인 잎새들이

마음껏 쏟아내는 언어들로

누구나 초록의 시인이 되는

눈부신 여름이 있고

열매 하나 얻기 위해

모두를 버리는 아픔으로

눈물겹게 아름다운

충만의 가을이 있고

눈 속에 발을 묻고

홀로서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인고의 겨울이 있네

사랑도 나무처럼

그런 것일까

다른 이에겐 들키고 싶지 않은

그리움의 무게를

바람에 실어 보내며

오늘도 태연한 척 눈을 감는

나무여 사랑이여

 

겨울나무

- 박신영

- 목필(木筆)로 쓴 시 한 조각

내 등에 얹혀

앓는 소리같이

기다림은

외로움보다 더 깊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받아들이지 못해 휘어진

내 하루치의 행복은

눈발로 뛰어 내리고

살아서 아픈

뿌리로 견디는 세월

끊어질 것 같은 절박함에도

찬바람 속에 맨 몸으로 서서

가지마다 현(絃)을 켠다.

 

소나무

- 이수진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늘 똑같습니다.

´푸르게 살아라´

세상을 살아가며

때론 한번쯤 흔들릴 수 있으련만

아무리 추운 바람이 불어와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곧은 의지

당신의 목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세상은

당신의 향기만큼이나 맑아집니다.


 

나무와 새

- 이성희

바람 불어

아니 흔들려본 날 없거늘

다닥다닥 붙어서

가을을 날기 위해

몸 던지던 잎새들

어느덧 어미 새 되어

하나씩 둘씩

어디론가 겨울속으로 날아가고

빈가지로 회상에 잠기던

어느 눈내리는 날

날아간 잎사귀의 영혼들이

새가되어 돌아와

가지마다 옹기종기 앉아

깃털 다듬으며

햐얀 그리움을 털어내고 있다


 

나무같은 사람

"나무는 한 번 자리를 정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아.

차라리 말라 죽을지라도 말이야.

나도 그런 나무가 되고 싶어.

이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일지라도..."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뿐입니다.

- 김하인의《국화꽃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은

초라한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잘려나간 밑둥만 남은 나무는

그에게 더 줄 것이 없어 미안했습니다.

"얘야, 이젠 네게 줄 것이 없어

미안하구나. 내 밑둥에 앉아 쉬거라"

나무의 말에 초라한 노인은

잘려나간 밑둥만 남은 나무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중에서 -


 

사철나무에 눈물과 웃음 열매가 주렁주렁

- 이은심

사철나무에 눈물과 웃음 열매가 주렁주렁

왼 쪽 가지에는 눈물 방울

오른 쪽 가지에는 웃음 열매

햇빛과 비와 바람 덕에 새콤 달콤 열렸구나

우듬지는 세상을 속이는 하늘의 서러운 눈짓

밑둥은 자기를 속이는 대지의 두툼한 입술

사철 하늘을 떠받드는 수십 수백 개 손이

파랑 노랑 빨강 주홍 고동 한꺼번에 물들어

기만과 기쁨과 도취는 눈물의 강으로 흘러가고

진리과 깨달음과 자유는 불꽃의 숲으로 타오르고

굳어진 저녁 들판 세상 풍경을 깨고

멀리서 달려오는 돌칼의 외침 하나

가을 하늘 맨 얼굴에 키쓰를 하며

푸른 불꽃 붉은 들불을 일으키고 다니는구나

사철나무 가지에 눈물 방울 웃음 열매 가득

세상 철 든 나뭇가지 사방 흔들어

배고픈 대지 입 벌린 구덩이에

후두둑 푸드득 떨구어 주는구나


 

자작나무 숲 그리워 달려가던 날,

- 이은심

자작나무 숲 출렁거리는 파도가

미친듯이 그리워서 달려가던 날,

그 곳에 너의 발자국이 있었으니

그로써 다행이더라

험한 벼랑 끝 돌쩌귀에

뿌리박고 선 저 소나무,

서로 흉벽을 부딪칠 듯

높이 외쳐 부르는 파도에,

비틀어진 붉은 가지로

오늘, 하늘의 곡척을 물으니

여름밤 흐르는 은하수 별들,

모두 제 궤도를 지키는 운행 ,

빛나는 윙크를 던지더라

저기 밀려오던 해일조차

앞발 치켜들고 그 자리 멈춰선

큰 곰별자리 되어있으려나

맑게 씻긴 별들 눈동자마다

이슬보다 깊은 깨우침에

땅끝 마을 낮은 지붕 마다

이로움이 모래보다 많더라

눈물의, 시간의 강가에서

기운 그물 거푸 던지던 늙은 어부,

찢긴 그물 속 붉은 협곡 건너온

독수리 눈빛도 있더라


잔디 위에 잠든 나무

- 유성순

밤이슬 촉촉이 내리는

네온사인 불빛 아래

하늘 구름 이불 삼고

소주 한 병 나뭇 가지에 걸고

잔디 위에 서성이다 쓰려진 나무

무엇이 괴로워

무슨 사연 그리 깊어

밤마다 풀잎에 하소연을 하나!

돌아 갈 곳 어느 뫼(山)인가!

철을 몰라 계절도 잊었나!

날지 못해 둥지를 찾지 못하나!

낮 거리에서 비를 맞고

햇살에 몸을 말리고

밤 거리를 헤매다 그만 그만...


 

신갈나무 숲에선 재즈소리 눈부시다

- 송문헌

신갈나무 숲에선 경쾌하고

활기찬 재즈를 부르고 굴참나무

우거진 곳에선 힘차고 우렁찬 행진곡

소리가 난다

초여름

숲 속에선 자주 풀빛

음악회가 열린다.



어린나무 어쩌라고

- 유성순

마주보며 맹세했던 지난 날

벌써 잊고 살았더란 말인가

지키지못할 그 약속

손가락 걸고 왜 했던가

우리 이제 손 잡고 살아 본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뿐이라네.

지는 노을 바라보며

영원토록 함께 살자 더니

해는 떠서 중천에 있는데

꿈이 많은 사랑나무

텃밭에 외롭게 버려 두고

서산에 지는 해를 따라 가버리면

텃밭에 뿌려둔 어린 나무 어쩌라고

사랑도 행복도 버리고

부모 형제 보는 앞에

혼자 서산으로 가버리면

텃밭에 뿌려둔 어린 나무 어쩌라고

 

감나무 잎새

- 우종복

마당 한켠

감나무에

흐드러지게 매달린

감이 탐스러워

욕심을 내보았더니

아직 설익은 풋감이라네

부끄러운

마음에

감나무 잎새 하나 따서

가방에 넣고

집에와

그 위에 편지를 쓰네

- 모든 것은 때가 있느니라 -


 

소나무

그대는 아는가

굳이 양지쪽이 아닌 온기를 면할

그 만큼의 따사로움이

전신을 휘감으면

영락없이 또 다른 색깔로 피어나

셀 수 없을 만큼 허물 벗는,

그리하여 나를 괴롭히는 것이

그대인 것을

그대는 아는가

수많은 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불덩이보다 더 뜨거운 가슴

삭이고 삭이며

나타낼 수 없는 나를 죽이고

그대에게 호응하는 나를

그대는 아는가

따스한 손길이 그립지만

누가 내 손을 어루만져 주겠는가

이 냉랭한 계절에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고

가슴이 뜨거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만

늘 푸르러야 하는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

그대는 아는가

그리하여

간들간들 휘어진 허리로 희롱하는

봄바람이 불어와 잠 못드는 밤

수 천의 몽우리로 피어나

밤새 서걱이다

아침이면 솔가리 한 움큼으로

혼절하고 마는 것을


 

어느날 나는 나무꾼이 될 것이다

- 김종제

어느날 나는 나무꾼이 될 것이다

아니 나는 나무꾼이 분질러 놓은

나무가 될 것이다

아니 나는 나무꾼의

시퍼렇게 날 선 도끼가 될 것이다

이제 선녀도 나무도 없는

마른산에 올라가

먼저 내마음을 도끼로 가른다

천둥 번개로 흐려졌다가 맑아졌다가

꽃 피고 지고 좋아졌다가 싫어졌다가

기우뚱 하며 새벽으로 기우는 달

아아,

강에 가면 물이 되고 싶었지

아아,

산에 가면 꽃이 되고 싶었지

가고 싶은 그 길로 한참을 가다가

저 환장할 푸른 하늘을

도끼로 번적 내려친다면

아아,

나는 세상을 번쩍 하고 가르는

한 줄기 빛이 되고 싶었지

오랫동안 산자락으로 덮어 감춰둔

핏자국 무섭게 드러나거나

수백년 묵혀두었던 멍석 속의

저 폐허 같은 저 칠흑의 어둠 같은

저 누더기의 저 만신창이의

어리석고 부끄러운 저 상처투성이의

하늘을 도끼로 내려친다면

허물을 뒤집어쓴 채 악취가 나는

저 햇빛 가진 하늘을 도끼로 내려친다면

그리하여 너는 너 나는 나 하면서

무너져버리는 집에 우리가 서 있다가

이 세상 주인 누구냐

나와 보아라 나와 보아라 하면서

소나기, 이 세상 뒤집어놓으려고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새,

화들짝 놀라며 멀리 날아간다면

나비,

그리운 선녀처럼 하늘하늘 춤춘다면

이 세상,

나무꾼의 도끼를 들어

마구 마구 반쪽으로 가른다면

어느날 나는 나무꾼이 될 것이다

어느날 나는 나무꾼의 도끼가 될 것이다



강가에 나온 버드나무

- 정숙진

강물은

흐르지 못한 몸

술술 씻어 내리고

버드나무는

긴 겨울잠에서

뜨지 못한 눈 깨어나

초롱초롱 눈 달고

입을 열어 종알거린다

조용히 흐르는 물

저들끼리 재잘거리는데

강가에 나온 버드나무

반갑다고 길게 내민

손끝에 사랑이 담겨있다

바라보던 바람

씽긋 미소 짓고

멀리 서 날아드는 새

버들잎 물고 난다

 

100년짜리 참나무

-

100년짜리 참나무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한다.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란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란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

-강준민의 ≪뿌리깊은 영성≫ 중에서-


 

단풍나무(동시)

- 민경교

어여쁜 단풍나무가

이사를 간데요

넓은 광야가 보이는

옥상으로

이사를 간데요

옥상에는

안방

사랑방

집 단장이 한창 이래요

이 밤이 가고

새 봄이 오면

더 예쁘게

동산도 만들어 준데요


 

나무를 심자

- 유성순

산에도 나무를 심고

가슴에도 나무를 심자

산에는 꽃피는 나무를

가슴에는 향기로운 사랑 나무를

사월오일 청명한식날

산도 푸르게

마음도 푸르게 사랑나무를 심자

산에는 꽃피는 나무를

가슴에는 향기로운 사랑 나무를


 

나무에게

- 안병찬

거세게 삶을 몰아치며

아프게 한 이 겨울에

혼자만의 슬픔은 아니었을

같은 모습의 네가 서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듯 펼쳐진

일상의 갈래는

작은 여유로도

하늘을 누리며 봄을 맞는다.

그래!

너와 나는

모든 게 다르지만

한 언덕 위에

하나의 빛을 받으며

나란히 서 있는 단정함.

너와 나

닮은 곳은 뿌리였을지 모른다.


 

고로쇠 나무

- 민경교

아비는 지하에서

돌 뿌리를 돌며

깊게 멀리 땅을 파신다

앞가슴이 뚫리고

젖줄이 새는

어미의 아픔도 모르고

곱게 푸르게 태어날

자식을 위해

지금도 땅을 파신다

풍경소리도 들리지 않는

저 암흑 속에서

묵묵히 땅을 파신다


 

나무

가만히 서 있다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는 길이 멀수록

등 굽히고 낮게 쉬어가고자 함이다

동행하던 빛들이 피곤하여 눕고

나뭇잎조차 떨어져 나 홀로 남았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배설물 뿌리까지 스며도

참고 견디어야한다

내 속을 빠져나간 수분 따라

나이테로 금을 긋던 수런거림,

봄바람의 안부는 발등에 젖은 냄새를 털고 있다

기다림이 깊을수록 설레임이 깊고

침묵은 강 같이 흐른다.

아무리 멀리 간 들

봄이면 돌아와 내 앞에 설 기쁨 한줄기.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 - 효림 스님의 《힘든 세상, 도나 닦지》 중에서 -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잘려서 서까래 감으로 쓰인다.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서 기둥이 되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큰 고목나무가 된다.

못생긴 나무는 목수 눈에 띄어 잘리더라도

대들보가 되는 것이다.

너희들도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가장 못난 사람, 재주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을 지키는 주인이 되고

불교계의 거목이 되는 것이다.

부디 초발심에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 효림 스님의 《힘든 세상, 도나 닦지》 중에서 -



암벽 소나무

- 차 영섭

솔방울 연잎 사이

어머님 품에 안겨 있었지

거센 바람 날 몰아

허공 헤매다가

날개 접고 움 튼 곳이

산새들도 멀다 하는

여기 만잠봉 긴 절벽

내 삶의 터전 됐습니다.

낭 끝에 매달려

떨어지면 죽는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꼭꼭 틈새 비집고 뿌리 내렸어요.

오랜 세월

바위 틈새에 끼어

쓰라린 고통 참아내고

꽃을 피우는

이젠 으젓한 성인

자식들도 몇 살림 차려 주고

이웃 터에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저 가끔씩 뿌려 준 빗물 아끼며

나는 멀리서 쳐다 보는

나를 내려 봅니다.

 

나무

- -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류시화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


 

얼음나무

- 김종제

한 겨울 내내 폭포 아래 걸아가는

나무가 있다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여름의 시원한 소나기도 아닌 것에

옷 벗겨진 채 밖으로 내몰려 있다가

물 흠뻑 뒤집어 쓰고

밤새도록 이빨 부딪히며 덜덜 떨고 있는

저 가엾은 피붙이들

저 불쌍한 내새끼들

내몸의 어느 한 구석에서 떨어져 나와

대책없이 얼어붙은 겨울 나무들

따스한 어머니 봄 손길을 마냥 기다리다가

눈물 마저 얼음이 된 저 안타까운 것들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우겨대는 것들 그래 너희들 저것들이

무슨 중죄를 지었는데

햇빛 구경도 못하게 하고 숨도 못 쉬게 하고

얼음의 감옥에 가두는 형벌을 주는 것이냐

저 원망의 희디흰 눈초리 보아라

그래 너희들도 벌거벗고

겨울의 한 데 나가 영하의 물 온통 맞고

사내의 뿌리도 계집의 엉덩이도

한 번 다 꽁꽁 얼어봐라

달도 보고 별도 보면서

새벽까지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물 맞으면서 서 있어봐라

손가락 대면 쩍쩍 갈라지는

얼음의 살갗을 가져봐라

너희와 피 섞인 것들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얼어봐라 얼어봐

그렇게 네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

너의 무덤 하나 만들어봐

그것이 어떻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너희들 한 번 말해봐라 말해봐


 

사막에 자라는 나무

사막에는 비가 안 옵니다.

나무도 풀잎도 보이지 않고 모래만이 끝없이 끝없이

깔려 있는 곳이 사막입니다.

다른 땅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울어도

사막에는 뽀얀 모래 위에 봄바람이 이따금 불 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푸른 잎새가 너울너울 늘어지고 그 사이로

차디찬 샘물이 흘러내려도,

사막에는 하얀 모래 위에 여름바람이

이따금 불 뿐입니다.

다른 땅에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도

저 사막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끝없는 모래 위에 이따금

겨울바람이 불 뿐입니다.

그러나 어린 벗이여,

이 거칠고 쓸쓸한 사막에는 다만 혼자서 자라는

이름 모를 나무하나가 있습니다.

깔깔한 모래 위에서 쌀쌀한 바람에 불려 자라는

어린 나무 하나가 있습니다.

어린 벗이여,

기름진 흙에서 자라는 나무는 따스한 햇볕을 받아 꽃이 핍니다.

그리고

고이고이 내리는 단비를 맞아 잎이 큽니다.

그러나 이 깔깔한 모래 위에서 자라는 나무는,

쌀쌀한 바람에 불려서 자라는 나무는,

봄이 와도 꽃필 줄을 모르고 여름이 와도

잎새를 못 갖고 가을에는 단풍이 없이

언제나 죽은 듯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벗이여,

이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입니다.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도 지나고 어떤 춥고 어두운 밤 사막에는 모진 바람이 일어,

이 어린 나무를 때리며 꺾으며 모래를 몰아다 뿌리며

몹시나 포악을 칠 때가 옵니다.

나의 어린 벗이여,

그 나무가 죽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때 이상하게도

그 나무에는 가지마다 부러진 가지에도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꽃이

송이송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이 꽃잎은 별 하나 없는

어두운 사막을 밝히고 그 향기는 멀리멀리 땅 위로 퍼져갑니다.

-피천득의 <어린 벗에게> 중에서

'시 두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문화 유산 古時調와 詩歌  (1) 2011.05.23
고전시가  (0) 2011.05.15
영상시 모음  (2) 2011.02.15
물고기  (0) 2011.02.12
유리창  (0) 2011.01.31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