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다.말해야 할 자리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로 있다가, 나와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소인이다.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말했다.“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한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
(當言而言, 固强者能之,當嘿而嘿,非至强不也).”
굳이 말한다면 침묵 쪽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조현기(趙顯期1634-1685)도 “말해야 할 때 말하면 그 말이 옥으로 만든 홀(笏)과 같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면, 그 침묵이 아득한 하늘과 같다
(當語而語,其語如圭璋,當嘿而嘿,其嘿如玄天)”
고 했다.
공자(孔子)가 말했다.“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
(可與言而不如之言,失人.不可與言而與之言,失言).”
할 말만 하고, 공연한 말은 말라는 뜻이다.
맹자(孟子)“진심(盡心)”하에는 이렇게 적었다.“선비가 말해서는 안 될 때 말하는 것은 말로 무언가를 취하려는 것이다.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서 낚으려는 것이다,
(未可以言而言,是以言첨餂之也.可以言而不言,是以不言첨餂之也)
꿍꿍이속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말과 침묵을 반대로 한다.”김매순(金邁淳.1776-1840)의 말이다.“물었는데 대답을 다하지 않는 것을 함구(금噤)라하고,묻지 않았는데도 내 말을 다 해주는 것은 수다(찬囋)라 한다. 함구하면 세상과 끊어지고, 말이 많으면 자신을 잃고 만다.
(問而不盡吾辭,其名曰噤,不問而惟吾辭之盡,其名曰囋,噤則絶物,囋則失己.)”
정경세(鄭經世1563-1633)는 호를 일묵(一黙))으로 썼다. 쓸데없는 말 만 마디를 하느니 차라리 내처 침묵하겠다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른 처신이 어렵다. 말과 침묵, 둘 사이의 엇갈림이 참 미묘하다. /정밈 한양대교수./조선일보(世說新語)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