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찾기( 아래 목록 크릭 또는 왼쪽 분류목록 클릭)

외통궤적 외통인생 외통넋두리 외통프리즘 외통묵상 외통나들이 외통논어
외통인생론노트 외통역인생론 시두례 글두레 고사성어 탈무드 질병과 건강
생로병사비밀 회화그림 사진그래픽 조각조형 음악소리 자연경관 자연현상
영상종합 마술요술 연예체육 사적跡蹟迹 일반자료 생활 컴퓨터

我相과 敎相과 法相

[마태 19,3-12]

그때에 3 바리사이들이 다가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5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7 그들이 다시 예수님께,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 하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10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12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오늘 복음의 말씀은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특히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완고하다는 것은 변화를 싫어하는 모습이므로 오직 전통과 관습 그리고 격식과 형식을 중시하여 본질을 놓치는 경우로 이런 사람들 일수록 경전의 문자에 얽매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페단 때문에 禪에서는 불립문자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언어와 문자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道와 法을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덕경의 첫 말씀은 '道를 道로 이름 지으면 그것은 道가 아니다.' 하였으며 부처님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느 상에 사로 잡혀있으면 그 본질을 보지 못하므로 오늘 말씀처럼 우리의 완고한 모습을 我相이라 하며 설사 진리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갇히면 그것을 法相이라 합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은 我相은 물론 法相에서도 벗어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바리사이들은 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으며 이런 자들이 바로 法相에 억매인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기에 교리를 진리처럼 절대화하는 敎相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결혼은 불완전한 남녀 두 사람이 결합하여 한 몸으로 완전한 모습이 되어 행복을 추구하는데 그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그 행복을 깨뜨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남편은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 이번 주간 수요일 복음인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신 말씀을 실천하면 결혼생활의 행복은 보장될 것입니다.

당시 사회 풍습은 아내는 지금처럼 남편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남편은 맘에 들지 않으면 아내를 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그런 경우에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면 아내는 일정한 재산을 위자료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히려 여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들은 이런 방편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므로 율법의 근본정신을 깨우쳐라 는 뜻에서 '아내를 버리지 마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율법을 그 근본정신을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봅니다. 전라도에 사는 사람이 예수님께 서울을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북쪽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다음은 함경도 사람이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쪽으로 가라 하였습니다. 인천 사람이 묻자 동쪽으로 가라 하였으며, 춘천 사람이 묻자 서쪽으로 가라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의 방향은 동, 서, 남, 북 어느 쪽이 맞습니까? 서로가 예수님이 알려주신 방향이 옳다고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럴 경우에 내 생각과 다르다고 정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어느 묵상글 중에서 발췌]

출처: 사막에서 만난 샘물:http://blog.naver.com/ceejay

'글 두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 됨됨이  (0) 2011.07.01
김삿갓  (2) 2011.06.30
삶의 현장  (0) 2011.06.28
인생훈  (0) 2011.06.27
銘心人生  (0) 2011.06.27
Posted by 외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