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미양상(雙美兩傷)
말만 들으면 당대의 석학이요 현하(懸河)의 웅변인데, 기대를 갖고 글을 보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글은 빈틈없고 꽉 짜여 찔러 볼 구석이 없지만 막상 말솜씨는 어눌하기 짝이 없는 수도 있다. 말도 잘하고 글도 좋기가 쉽지 않다. 재능의 방향이 서로 달라 그렇다.
진(晋)나라 악령(樂令)이 멋진 말을 잘했지만 글솜씨는 영 시원찮았다. 답답했던 그는 자신의 구술(口述)을 하남 태수에게 받아 적게 해 100여 마디의 괜찮은 글을 얻었다. 글 잘하는 반악(潘岳)이 여기에 다시 살을 보태 매끄럽게 가다듬자 한 편의 훌륭한 글이 되었다.
같은 시기 동평(東平)의 대숙 광(大叔 廣)과 지우(摯虞)는 서로 앙숙이었다. 대숙 광은 변론에 능해 말로는 도저히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조정에서 대숙 광이 지우에게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늘어놓으면 지우는 말문이 콱 막혀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우가 물러나와 글로 써서 조리를 갖춰 조목조목 광의 논리를 따졌다. 이번엔 대숙 광이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아무 대답도 못했다. 두 사람은 툭하면 서로 비웃고 헐뜯느라 나라가 잠잠할 날이 없었다.
당나라 때 배광정(裵光庭)은 염린지(閻麟之)를 심복으로 두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의견을 구한 뒤에야 비로소 글로 썼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염린지의 입과 배광정의 손[麟之口, 光庭手]'이라고 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우승유(牛僧儒)는 글을 잘 지었고, 양우경(楊虞卿)은 말을 잘했다. 당시 서울 사람들이 두 사람의 벼슬 이름을 따서 '태뇌(太牢)의 입에다 소뇌(少牢)의 손'이란 말이 있었다. 입이 있고 손이 받쳐주니 찰떡궁합이었다.
한 사람은 말을 잘했고, 다른 한 사람은 글에 능했다. 이 둘이 환상의 호흡을 이뤄 시너지를 내자, 예상치 못한 멋진 결과가 나왔다.
엇박자를 내며 서로 잘났다고 투덕대면 되는 일 없이 세상만 시끄럽다.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온다. 글은 여러 예화를 소개한 뒤, "합치면 쌍미요, 떨어지면 양상이다(合則雙美, 離則兩傷)"라는 말로 맺었다. 쌍미는 윈·윈(win-win)이 되어 좋지만, 양상은 서로 다쳐 상처만 남는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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