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난도(滋蔓難圖)
윤기(尹愭·1741~1826)가 채마밭에서 잡초를 김매다가 '서채설(鋤菜說)'을 썼다. 여러 날 만에 채마밭에 나가 보니 밭이 온통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채소는 잡초에 기가 눌려 누렇게 떠 시들었다. "아! 이것은 아름다운 종자인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꼬? 저 남가새나 도꼬마리는 사람에게 아무 유익함이 없건만 누가 저리 무성히 자라게 했더란 말인가?" 깨끗이 김을 매주자 채소가 겨우 기를 펴서 바람에 잎이 살랑대며 기쁜 빛이 있었다.
그가 다시 말한다. "앞서 채소가 처음 났을 때 이렇게 시원스레 해주었다면 비와 이슬을 고루 받아 생기를 타고 잘 자라 아침저녁으로 따서 내 밥상을 도왔을 것이다. 저 나쁜 잡초가 어찌 침범할 수 있었겠는가? 또 채소가 잡초에 곤욕을 겪은 것이 어찌 채소의 죄이겠는가? 잡초의 침범을 이기지 못해서였다. 잡초가 채소를 안중에 두지 않았던 것이 어찌 잡초의 잘못이랴! 마구 돋아날 때 김을 매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잘못은 사람에게 있으니 어찌 잡초가 밉고 채소가 애처로운 것이겠는가?"
글 중에 잡초 운운한 대목은 '춘추좌씨전' 은공(隱公) 원년 조 기사에서 '넝쿨을 무성하게 번지게 해서는 안 된다. 넝쿨은 없애기가 어렵다(無使滋蔓, 蔓難圖也)'라고 한 데서 나왔다. 잡초를 미연에 막지 않으면 나중엔 넝쿨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서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는 의미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 ~1396)도 이 뜻을 받아 '제장입성(諸將入城)' 시에서 '잡초 넝쿨 도모하기 어렵단 말 예 듣더니, 미친 물결 되돌릴 수 있음을 이제 보네(昔聞蔓草圖非易, 今見狂瀾倒可回)'라 했다. 난마처럼 얽혔던 현실이 차츰 정상화되어가는 정황을 노래한 내용이다.
윤기는 자신의 글을 이렇게 끝맺었다. '비록 그러나 지난 일은 그뿐이다. 오늘 황폐한 채마밭을 면한 것만도 다행이다. 저도 한때요 이도 한때이니 또 어이 한탄하리. 옛 사람은 넝쿨 풀은 제거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지금 넝쿨을 내버려두는 바람에 마침내 캐내고 베어내는 수고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채소는 이미 병들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아! 넝쿨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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