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雨如相欺 (야우여상기) 밤비가 나를 속이고
乘睡暗霏霏 (승수암비비) 자는 새 부슬부슬 몰래 내렸네.
曉看花淚濕 (효간화루습 ) 아침에 보니 꽃이 눈물에 젖어
紅亞最長枝 (홍아최장지) 긴 가지를 붉게 드리웠네.
정조 순조 연간의 문인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가 60세 때 지었다. 무덤덤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꽃잎 하나에 마음이 움직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왔더니 함초롬히 젖어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뻗어 나온 꽃가지는 붉게 핀 꽃의 무게에 처져 있다. 머리 수그린 채 울고 있는 젊은 처자의 모습인 듯 남아 있는 잠결을 확 깨운다. 그랬구나. 지난밤 자는 사이에 기척도 없이 비가 내렸다. 남이 눈치챌까 봐 숨죽이고 내린 비나 고개를 떨구고 눈물 흘리는 꽃에게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가 보다. 그 사연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어도 붉은 꽃잎 무더기에 마음이 설렌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