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此梧桐樹 (애차오동수) 집 앞의 오동나무 사랑한 것은
當軒納晩淸 (당헌납만청) 저물 무렵 맑은 그늘 드리워선데
却愁中夜雨 (각수중야우) 한밤중에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翻作斷腸聲 (번작단장성) 뜬금없이 창자 끊는 소리 낼 텐데.
17세기 여성 시인 울산 이씨(李氏)가 지었다. 이씨는 고성군수를 지낸 김성달(金盛達·1642~1696) 소실이다. 마당 한쪽에 오동나무가 서 있다. 집 주변의 꽃과 나무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저녁 무렵이면 으레 방안으로 들어오는 뙤약볕을 막아주는 서늘한 그늘의 넓은 품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오동나무를 때로는 베어버리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다. 밤이 깊어 비라도 내리게 되면 큰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잠을 깨우고, 잠을 깨면 빗소리가 임을 그리는 마음을 불쑥 일깨워 가슴을 저리게 하여 긴긴 밤을 지새우게 만든다. 겨우 다독거린 임을 향한 그리움을 흔들어놓을 때 오동나무는 정말 얄밉다. 이씨는 본래 시를 전혀 짓지 못했는데 남편이 죽은 뒤 당시(唐詩) 수백 수를 외우고서 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400여 개의 글자만으로 시를 지었으나 아름다운 작품을 다수 남겼다.//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