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손
파도가 쉬지 않고 바다를 닦는 것은
햇빛을 볼 수 없는 고기들 때문이다
하늘이 잘 보이라고 문을 여는 것이다
바람이 부지런히 들판을 쓰는 것은
혼자서는 꼼짝 못하는 씨앗들 때문이다
마음껏 세상 구경하라고 길을 트는 것이다
/김영철
연두 손금들이 시시각각 펼쳐지는 봄날. 바람도 햇볕도 유독 분주한 때다. 그 손이 닿을 때마다 들판도 새 꽃을 받들며 새 생명을 착착 피우고 있다.
그런데 '바람이 부지런히 들판을 쓰는' 것은 '혼자서는 꼼짝 못하는 씨앗들 때문'. 물론 '파도가 쉬지 않고 바다를 닦는 것' 역시 '햇빛을 볼 수 없는 고기들 때문'이란다. 그다음 일이야 안 봐도 훤하니 '하늘이 잘 보이라고', '마음껏 세상 구경하라고' 막힌 길을 터주는 것! 동심 같은 심안(心眼)으로 보면 잘 보이는 속 깊은 이치다. 아름다운 손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더럽힌 신발을 새 신으로 반짝 내어주던 어머니들 손길처럼.
둘러보면 '아름다운 손'이 참 많다. 때 놓칠라, 시멘트 틈에까지 민들레를 피워내는 지상의 크나큰 손처럼. 그런 힘에 기대 우리도 봄이라는 씨앗을 넣는 것이리.//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