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복상의(禍福相倚)
어느 날 얼굴에서 환한 빛이 나는 신녀(神女)가 대문을 두드렸다. "어찌 오셨습니까?" "나는 공덕천(功德天)이다. 내가 그 집에 이르면 복을 구하던 자가 복을 얻고 지혜를 구하는 자는 지혜를 얻는다. 아들을 빌면 아들을 낳고 딸을 빌면 딸을 낳는다. 모든 소원을 다 뜻대로 이룰 수가 있다." 주인은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 목욕재계를 한 후 공덕천을 집의 가장 윗자리로 모셨다.
잠시 뒤 얼굴이 시커멓고 쑥대머리를 한 추녀(醜女)가 찾아왔다. 주인이 퉁명스레 말했다. "너는 어찌 왔느냐?" "나는 흑암녀(黑暗女)이다. 내가 그 집에 이르면 부자가 가난해지고, 귀한 자는 천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요절하고, 젊은이는 병들어, 남자가 대낮에 곡을 하고, 여자는 밤중에 흐느끼게 된다." 주인이 팔을 내저으며 몽둥이로 그를 문밖으로 내쫓았다.
공덕천이 말했다. "안 된다. 나를 섬기려는 자는 또한 저 사람도 섬겨야 한다. 나와 저 사람은 형상과 그림자의 관계요, 물과 물결의 사이이며, 수레와 바퀴의 관계다. 내가 아니면 저도 없고, 저가 아니면 나도 없다." 주인이 경악해서 손을 저으며 공덕천마저 내보냈다. 원굉도(袁宏道)의 '광장(廣莊)'에 나오는 얘기다.
인간의 화복(禍福)이 맞물려 있어, 복만 받고 화는 멀리하는 이치란 없다는 뜻이다. '노자'도 "화는 복이 기대는 바이고, 복은 화가 숨어 있는 곳이다(禍兮福所倚, 福兮禍所伏)"라고 했다. 그렇다면 변고를 만났을 때 이를 복으로 돌리는 지혜와, 복을 누리면서 그 속에 잠복해 있는 화를 감지해 미연에 이를 막는 슬기를 어떻게 갖추느냐가 문제다. 눈앞의 복에 취해 그것이 천년만년 갈 줄 알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제 발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재앙을 만나면 세상에 저주를 퍼붓고 하늘을 원망해 복이 기댈 여지를 스스로 없앤다.
공덕천을 맞아들이려면 흑암녀가 따라 들어온다. 흑암녀가 무서운데 공덕천이 어찌 겁나지 않으랴! 좋기만 한 것은 없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 나쁜 것을 좋게 돌리고, 좋은 것을 나쁘게 되지 않게 하려면 매사에 삼가고 두려워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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