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속도로 푸른 시간이 흐른다
하늘은 전하지 못해 웅크린 말들처럼
우거진 잎 사이마다 그렁그렁 갇혀 있다
번지는 마음보다 늘 더딘 걸음걸이
그늘 한쪽 휘청일 때 주춤대며 또 멎는다
스스로 일으킨 먼지가 발등을 덮어온다
그대의 기억 속에 나는 잘 있나요
그리움은 그 얼마나 빛나다 사라졌을까
푸르던 한 때가 떨어져 먼 길부터 젖어온다 /강경화
아름다운 길로 꼽혀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곧게 뻗은 나무들이 이루는 원근감이 일품이다. 잎이 다 지면 구도가 한층 선명해질 것이다. 요즘은 도심의 길도 아름다워서 공원 산책만도 좋다. 가로수 낙엽들이 쌓이고 구르는 만추(晩秋)의 길도 좋았다. 낙엽을 쓸지 않아 가을 도시를 걷는 맛이 그윽했던 것이다.
그 속엔 '그렁그렁' 웅크린 말 있었는데 털 새도 없이 가는가. '늘 더딘 걸음걸이'로 아픈 시인이 다 걷도록 가을이 좀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스스로 일으킨 먼지가 발등을 덮어온다'니, 자신부터 보라는 죽비 같다. 사실 발등의 먼지도 너무 깊이 쌓이면 버리고 싶어진다.//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