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다의 열원
구름도 머흘어라 저도 동동 못 뜨는가
맑은 한강인들 굽이쳐 흐르겠나
들볶인 겨레 숨소리 삼각산도 목을 놓고
연화 극락도 내사 정말 못 가겠다
더구나 요단강을 내가 건널 턱이 있나
티끌에 싸이고 싸여 이 겨레와 같이하리
눈보라 비바람에 알몸이 드러나고
서릿발 동부새에 뼈마디가 갈리어도
조국의 이 한복판을 이 겨레와 지키리 /조종현(1906~1989)
'조국의 이 한복판을 이 겨레와 지키리'라는 뜨거운 다짐. 파고다만 아니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촛불도 이러했을 것이다. 그런 열원(熱願)으로 유모차를 끌고 지팡이를 짚고 책가방을 던지고 나와 외쳤으리라. 시인(조정래 작가 부친)이 승려이면서 시대적 열망 앞에 결연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다.
돌아보면 '맑은 한강'이 굽이치게 하기는커녕 꽉 틀어막는 세월을 자주 겪었다. 그럴 때마다 '들볶인 겨레 숨소리'에 '삼각산도 목을 놓고'는 했던가. 핏물이 끼지 않을 수 없는 게 역사라지만 우리 현대사는 민중의 피로 유독 자주 붉었던 것 같다. 하지만 '티끌에 싸이고 싸'일지라도 함께할 손들이 여전히 뜨겁다. 더 푸르게 굽이칠 한강을 온몸으로 깨워 일으킬 듯!//정수자 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