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은 비닐봉지가
아름답게만 보인다
곧 구겨지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사물의 편에서
사물을 비추고
사물의 편에서
부풀어오르고
인정미 넘치게
국물이 흐르고
비명을 무명을 담는
비닐봉지여
오늘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비닐봉지 앞에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근화
아무 물건이나 잘 담는 비닐 주머니를 시인은 바라보고 있다. 노란빛 귤, 가을의 감, 식품, 마실 것을 담는 비닐봉지다. 때로는 먹을거리의 질름거리는 국물조차 담는 비닐봉지다. 곧 구겨질, 싸구려 봉지이지만 사물의 편에 서는 비닐봉지다. 인정이 많고, 참을성이 있고, 덕스러운 비닐봉지다.
비닐봉지는 대개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한두 번 사용하고 휴지 조각처럼 버려진다. 그러나 비닐봉지는 얇고 넓적하거나 길고 둥글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묵묵하게 물건을 빙 둘러싸는 것인데, 둘러싸되 물건에 맞추고 물건을 돕는다. 맞춰 돕되 불평이 없으며, 구김살이 잡히더라도 언짢은 표정이 없다. 그래서 쭈글쭈글 구겨진 비닐봉지 앞에서는 마음이 편치 못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