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등에 업힌 돌배기 아기에게 오천 원을 쥐여 주었다.
이미 직장을 떠나 출가했으니 만나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던 터라. 반가운 나머지 격의 없는 돌발행동으로 이루어졌다.
그러고 그녀는 방을 떠났다. 그로부터 한 참 뒤 또 다른 퇴직 출가여직원이 아기를 업고 나타났다. 두 아기는 비슷한 또래였다.
예고 없는 대면에 당황하면서 지갑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오천 원짜리가 없다. 그러니 세워 놓고 이웃 동료에게 물어볼 수도, 은행에 갈 수도 없이 잠시 망설이는 그 순간 번개같이 스치는 것, 앞의 오천 원.
별수 없이 만원을 아기 손에 들려주었다. 그도 나갔다.
뒤에 안 일이지만 퇴직여직원들, 그들만의 모임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오천 원짜리든 만 원짜리든 같은 액수로 마음의 준비를 했을 터인데, 앗 잘못된 것을 깨닫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 온 아기 엄마가 아까 와는 생판 다른 낯빛으로 다가와서는 아기 손에 들린 오천 원짜리를 낚아채어 내 앞에 내밀면서 ‘얘는 아직 돈을 모릅니다. 돌려 드립니다.’
그러고 예의 바르게 물러간다.
본의 아닌 내 잘못된 처신의 결과임을 순간 뉘우치지만, 다른 어떤 언행도 오히려 더 구차한 내 모습으로 만들 것이고, 그녀 또한 대놓고 자기의 기분을 말할 처지가 못 됨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지금 이렇게 하는 자기의 생각 안팎을 그대로 들어낼 리 없을 것이라고까지 내 생각이 미쳤다.
사람차별까지 확장되었을 그녀는 자기의 감정을 누를 수 없었을 게다.
되돌려주는 그의 심경은 그대로 칼이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돌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그냥 담담히 받아 들면서 ‘녀석 훌륭하네!’ 얼버무리는 내 손은 떨릴 뿐이지만 몸은 땅에 얼어붙었다.
40년 전의 일이다.
따로 불러 변명의 기회를 마련하자니 그가 내색을 감춘다면 오히려 내가 무안할 것이고 그렇다고 여럿 있는 데서 내 행동을 변명하자니 더욱 우셋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냥 내 몫으로 묻어 두기로 한 그때였다.
오늘에 와서, 지난 이 일이 털어버릴 수 없는 앙금이 되어 끈적이고 있다. 가장 작은 일상이 바위의 무게로 짓눌러 댄다.
그러나 어쩌랴!
물리적 한계를 탈피한 영의 세계에선 이 모두가 풀리고 밝혀지리라고 뇌고 괴인다. /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