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노래
1
밭은 해마다
젖이 많은 엄마처럼
아이들을 먹여 살립니다
배추 무 상추 쑥갓
감자 호박 당근 오이
수박 참외 토마토 옥수수
아이들의 이름은
참 많기도 합니다
2
비 온 뒤
밭에 나가니
땅 속을 몰래 빠져 나온
아기 홍당무가
흙 묻은 얼굴로 웃고 있다가
나에게 들켜서
얼굴이 더 빨개졌습니다
"나 좀 씻겨 줘" 하길래
방으로 데리고 왔더니
내 책상 위에 앉아
날마다 밭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3
비 온 뒤
밭에 나가면
마음도 흙처럼 부드러워집니다
흙 속에 꿈틀대는 굼벵이도
오늘은 정답게 느껴집니다
다시 보는 햇빛 아래 흙을 만지면
말 잘 듣는 어린이의
착한 마음이 됩니다
4
아침부터 하양 나비가
밭에서 춤을 춥니다
하얀 감자꽃 위에
살포시 앉아
생각에 잠긴 흰나비
먼데서 보니
꽃과 나비가 하나입니다
/이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