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오는 길목 향해
까치발 목을 빼어
나팔 귀 쫑긋 세워
발짝 소리 기다리던
후드득 여우비에도
가슴 쿵쿵 일렁였지.
뭉게구름 두둥실 뜬
노고단 숨 가쁜 언덕
하마, 하마 기다림에
한 시절 설레었어
지쳐서 주황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도. /홍준경
한여름 야생화인 원추리가 벌써 피고 있다. 일찍 닥친 더위에 꽃들도 저의 철을 버리나 보다. 망우초(忘憂草)라고 하는 원추리는 달큰한 게 봄나물로도 인기였다. 어린 순을 잘라 무치거나 국 끓이기 좋아서 봄이면 돋기가 무섭게 뜯기곤 했다. 그래도 여름이면 뒤란 그늘에 주황빛 꽃을 곱게 피웠으니 봉선화며 백일홍처럼 언니의 꽃으로 새겨져 있다.
노고단은 지리산의 '숨 가쁜 언덕'. 거기만 밟아도 지리산을 다 오른 듯 가슴이 탁 트이고 뿌듯하다. 어느 여름 노고단에서 맞닥뜨린 원추리 꽃의 청초한 진경은 잊을 수가 없다. '후드득 여우비에도 가슴 쿵쿵' 떨고 있을 노고단 원추리꽃. '하마, 하마 기다림에 한 시절 설레'던 꽃들은 지금도 설레며 피겠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도' 그 품에 기른 기다림은 버리지 않았으리. 다름 아닌 지리산이고, 노고단이니! //정수자 시조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