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형(尹元衡)은 대비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다. 권세가 대단했다. 이조판서로 있을 때 누에고치 수백 근을 바치며 참봉 자리를 청하는 자가 있었다. 낭관(郞官)이 붓을 들고 대기하며 이름을 부르기를 기다리는데 윤원형은 꾸벅꾸벅 졸고만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낭관이 "누구의 이름을 적으리까?"하고 묻자, 놀라 깬 윤원형이 잠결에 '고치!'라고 대답했다. 앞서 누에고치 바친 자의 이름을 쓰라는 뜻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졸았다. 못 알아들은 낭관이 나가서 고치(高致)란 이름을 가진 자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먼 지방의 한사(寒士) 중에 이름이 고치인 자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참봉 벼슬을 내렸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윤원형의 첩 정난정(鄭蘭貞)은 당시 본처를 독살하고 정실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병문안 온 정난정이 앓아누운 본처에게 음식을 바쳤는데 그것을 먹자마자 본처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다가 바로 죽었다는 풍문이었다. 첩이 정실로 들어앉아 행세해도 사람들은 그 위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 했다.
정난정의 친오라비에 정담(鄭淡)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제 동생이 하는 짓을 보면서 반드시 큰 재앙을 입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 그는 여동생을 멀리했다. 왕래를 간청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집의 문 안쪽에 일부러 담장을 구불구불하게 쌓아(築墻繞曲) 가마를 타고는 도저히 출입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정난정이 오라비를 찾아가 볼 수도 없었다. 드러내놓고 거절한 것은 아니지만 거부하는 서슬이 사뭇 매서웠다.
윤원형이 실각한 뒤 금부도사가 온다는 말에 저를 죽이러 오는 줄 안 정난정은 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다. 윤원형도 엉엉 울며 지내다가 얼마 못 가 죽었다. 하지만 정담은 평소의 처신 때문에 여동생의 죄에 연루되지 않았다. 그는 호를 물재(勿齋)라 했다. 예가 아니면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집이란 뜻을 담았다. 그는 문장에도 능했고 '주역'에도 밝았다. 하지만 자신을 좀체 드러내는 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어질게 보았다. '공사문견록(公私聞見錄)'에 보인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