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등인 양 창(窓) 앞에
한 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 가지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 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유치환(1908~1967)
살구나무가 연분홍의 꽃을 등처럼 환하게 피우고 있다. 그 보얀 봄의 색채 위에 멧새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그 새는 맹금(猛禽)보다 사나운 겨울 들판의 적막 속에서 작은 몸을 오그리어 떨며 살던 새다. 우주에 봄이 완연하니 눈인사를 나누려 멀리서 찾아온 새다. 새의 상냥하고 예쁜 노래를 시인은 들었으리라. 새를 의미심장하게 주목해 반겨주는 마음이 봄볕처럼 따사하다.
새는 포르릉 날아갔지만 시인은 멧새가 앉았다 날아간 나뭇가지를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멧새가 날아간 길을 조용히 따라간다.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은 아지랑이가 서는,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봄의 길일 것이다. 채광이 좋은, 선량한 봄의 길일 것이다.//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