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歲南征信馬還(연세남정신마환)
해를 넘겨 남쪽 머물다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
長貧更不問辛酸(장빈갱불문신산)
찌든 가난에 모진 고생을 굳이 물어 무엇 할까?
家人杳杳應看月(가인묘묘응간월)
집사람은 아련하게 달을 보고 있을 테고
幼女憨憨與倚欄(유녀감감여의란)
어린 딸도 멀뚱멀뚱 난간 잡고 쳐다보겠지.
補綻寒衣空尺寸(보탄한의공척촌)
겨울옷을 기운다며 자를 대고 부산떨거나
抹塗雙頰解鉛丹(말도쌍협해연단)
두 볼에 분칠하며 화장한다 설칠 텐데.
正如絮襖行林裏(정여서오행림리)
솜옷 입고 숲속 길을 가는 것과 똑같아서
梢棘句牽步步難(초극구견보보난)
가시가 옷에 걸려 걸음걸음 힘겨웠지.
정조·순조 연간의 시인 박옹(泊翁) 이명오(1750~ 1836)가 젊은 시절에 썼다. 일 때문에 집을 떠나 남쪽 땅에서 해를 넘겼다. 오랜만에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가장이 떠난 서울 집은 고생이 말이 아닐 것이다. 찌든 가난 속에 하루하루 버티느라 집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 지금쯤 달을 보며 아련히 나를 그리워하고 있겠지. 그 곁에 어린 딸은 엄마의 속내를 모른 채 멀뚱멀뚱 달을 보고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딸이 못 견디게 보고 싶다. 엄마 따라 설쳐댈 딸애의 귀여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딸애가 눈에 밟혀 가기조차 힘들다. 마치 솜옷이 나뭇가지와 가시에 걸려 힘겹게 산길을 가는 듯하다. 대장부가 이래도 되는가 싶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