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복겸공 (惜福謙恭)
만나는 사람마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 새해다. 한때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일 때도 있었다. 복은 많이 받아 좋고 돈은 많이 벌어야 신나지만 너무 욕심 사납다 싶어 연하장에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쓴 것이 몇 해쯤 된다.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속복수전서(續福壽全書)'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惜福)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그는 자제들을 경계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어 있다. 너희는 자만해서는 안 된다." 그러고는 두 손자 이름을 수겸(守謙)과 수공(守恭)으로 지어주었다. 석복의 처방으로 겸손과 공손함을 제시했다. 다시 말했다. "처세 방법은 이 두 글자를 넘는 법이 없다." 자만을 멀리해 겸공(謙恭)으로 석복하라고 이른 것이다.
홍언필(洪彦弼)은 가법이 몹시 엄했다. 아들 홍섬(洪暹)은 벼슬이 판서에 올랐어도 겉옷까지 제대로 차려입지 않고는 감히 들어가 문안을 여쭙지 못했다. 홍언필이 몸이 안 좋을 때는 아들에게 손님을 접대케 했는데, 그가 검소한 복장에 말과 태도가 겸손했으므로 처음 보는 사람은 그가 한 나라의 판서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판서는 평소에 초헌(軺軒)을 타지 않았는데 하루는 어쩌다 타고 나갔다가 그 길로 부친을 찾아뵈었다. 그때 마침 홍언필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아들이 타고 온 초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즉시 사람을 불러 그 초헌을 대문 위에 매달아 두게 했다. 오랜 뒤에 그 초헌을 내려서 보내주며 말했다. "아비가 가마를 타는데 자식이 초헌을 타니, 그러고도 네가 편안하더냐?"//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