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歲事長相續(세사장상속) 1년 내내 할 일이 끝도 없이 이어져
終年未釋勞(종년미석로) 해가 가도 손을 털지 못하겠구나.
板簷愁雪壓(판첨수설압) 폭설에 무너질까 판자처마 걱정되고
荊戶厭風號(형호염풍호) 바람 불면 삐걱대는 지게문 소리 싫어라.
霜曉伐巖斧(상효벌암부) 새벽 서리 밟으며 산에 올라 나무하고
月宵升屋綯(월소승옥도) 달 뜬 밤이면 지붕 이을 새끼를 꽈야지.
佇看春事起(저간춘사기) 봄철이 시작되기 기다리지만
舒嘯便登皐(서소편등고) 그 때라도 휘파람 불며 언덕에 오를라나.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金克己·1150~1209)가 겨울철 농가의 생활상을 읊었다. 말은 농한기라 하지만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한 해가 끝나가는 철인데도 손을 툴툴 털고 놀 겨를이 나지 않는다. 폭설에 지붕이 주저앉지 않도록 고쳐야 하고, 바람에 삐걱거릴 문도 손봐야 한다. 새벽부터 나무를 해놓고, 밤이 되면 새끼도 꼬아야 한다. 그뿐이랴! 갖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가고 봄철이 되면 그때나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며 놀고 싶다. 설령 턱없는 바람일지라도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