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누군가 새벽부터 길을 만들고 있다
안개를 걷던 가을이 고개를 낮춘다
검게 탄 울음소리가 길 위를 나뒹군다
몸속의 슬픔 터진 어미는 눈이 멀었다
아들인, 아들이었던 한 사내가 입 잠긴 채
수척한 추억을 안고 길 밖으로 떠나고 있다 /황인원
사람을 보내는 일은 늘 어렵다. 새로운 '길을 만들고' 그 위를 걸어 다른 세계로 건너보내는 풍경. 이르든 늦든 마지막 헤어짐은 말할 수 없이 아프고 힘들다. 어제까지 같이 앉아 먹던 수저를 놓고 건너가는 먼 곳. 그래서 혼을 보내는 예도 깊을밖에 없다.
'안개'가 보내는 사람 마음에 만드는 또 다른 안개. '검게 탄 울음소리가' 나뒹구는 그 '길 위를' 함께 걷는 시간은 짧기만 하다. 보내는 사람이 '아들'이라면 '어미'의 슬픔은 '눈이 멀' 만큼 애절하다. 아니 잠시 눈머는 정도가 아니라 남아 있는 한동안을 시체로 살기도 한다.
떠나는 것들이 유독 밟히는 11월도 끝자락. 거리를 뒹굴던 낙엽마저 울음을 거두고 '길 밖으로' 갔다. 그런 중에 큰 자취를 지닌 또 한 분의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먼저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되짚게 하는 텅 빈 길섶이 길게 쓸쓸하다.//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