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
내 작은 시 그대의 위로가 되었으면
어깨를 눕히는 가을 깊은 산 아래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소리로 다가간다면
숲 속은 한순간에 낙엽으로 무너지고
밤나무 긴 가지로 길처럼 뻗은 나날
반가운 편지를 보낼까 망설이곤 했지 /엄미경
책과 더불어 등불을 댕기는 가을은 지난날 얘기다. 산과 들의 찬란한 잔치판에 여러 축제까지 보태니 독서는커녕 진득하게 들앉기도 어렵다. 와중에 오랜만의 시집 베스트셀러 소식이 반갑다. 대중에 대한 노골적 호소가 아닌 젊은 시인의 첫 시집이라 더 각별하다. 시 읽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가 싶겠지만 도처의 독자들 반응을 만나보면 시 사랑은 여전하다.
그렇게 '내 작은 시'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으면'…. '말갛게 울리는 물방울' 운율로 그대의 '어깨를 눕히는' 가을을 그려본다. 단풍처럼 물들어 시 속으로 무너진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 '편지를 보낼까' 망설임 딛고 가는 시집 편지가 더 반갑겠다. 쓸모없음으로 쓸모를 깨우는 시라니, 세상 앞에 서면 더 '작은' 시집으로 초대해도 귀히 받겠다. 연애편지며 주머니 속에서 귀 닳던 시집들의 한때가 불현듯 젖어드는 가을도 한가운데….//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