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사본(居家四本)
두 달 전 다산의 강진 시절 제자 황상(黃裳)과 황경(黃褧) 형제의 총서(叢書)를 보러 광주에 다녀왔다. 황한석 선생 집안에 전해온 이 책들은 두 형제분이 평생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중요한 책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초서(鈔書)한 것들이었다. 다산의 제자는 대부분 자기 호 아래 총서란 이름을 붙인 책을 남겼다. 이강회의 '유암총서(柳菴叢書)', 윤종진(尹鍾珍)의 '순암총서(淳菴叢書)'와 '순암수초(淳菴手鈔)', 윤종삼(尹鍾參)의 '춘각총서(春閣叢書)'와 '춘각수초(春閣手鈔)'등이 알려져 있고, 이번에 다시 황상의 '치원총서'와 황경의 '양포총서(陽圃叢書)''양포일록(蘘圃日錄)'등이 한꺼번에 나왔다.
이 중 단연 내 눈길을 끈 것은 '양포일록'에 실린 '거가사본(居家四本)'이었다. 주자(朱子)의 '화순(和順)은 제가(齊家)의 근본이요, 근검(勤儉)은 치가(治家)의 근본이며, 독서(讀書)는 기가(起家)의 근본이요, 순리(順理)는 보가(保家)의 근본이다'란 말에서 따와 집안 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네 가지 덕목을 여러 명언과 일화를 들어 설명한 책이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보인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옛 사람의 격언을 구하였다. 유배지에 서적이 없는지라 책 4~5종에서 명언과 귀한 말씀을 옮겨 적어 목차를 정해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사람이 고리타분하게 여겨 내던져 버렸다. 흐린 풍속을 웃을 만하다. 덕분에 이 책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가석하구나. 너희가 이 목차에 따라 여러 서적에서 가려 뽑아 책 서너 권으로 만든다면 또한 훌륭한 저술 한 부가 될 것이다."
'거가사본'은 다산이 잃어버렸다고 애석해한 바로 그 책이었다. 다산의 책 한 권이 이렇게 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지난 두 달간 작업해서 이제 번역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좋은 책을 베껴 가며 하는 공부의 위력을 강조했고,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에 따라 평생 책을 옮겨 적으며 공부하는 삶을 실천에 옮겼다. 그것이 저마다 총서로 남았다. 그중에 스승이 잃어버려 안타까워했던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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